9ㆍ11 총선을 앞둔 일본 정국에 예상과는 딴 판인 바람이 불고 있다. 처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우정(郵政) 민영화 법안’의 참의원 표결을 앞두고 꺼내 든 ‘중의원 해산→조기 총선’ 카드는 자민당 내 법안 반대파를 견제하기 위한 배수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되고, 중의원 해산이 단행되는 순간 풍향이 바뀌었다. 조기총선이 식언 회피용이 아니라 처음부터 당내 반대파를 털어내고, 권력기반 강화 노림수를 담았던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우정 민영화 법안’을 둘러싼 갈등을 거치며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전 정조회장 등 37명이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국민신당’을 결성, 총선에 임하고 있지만 앞길이 밝지 않다. 자민당은 기다렸다는 듯 이탈파 거물 정치인들을 겨냥한 저격수를 속속 배치, 국민신당의 기세를 꺾었다.
내각 지지율이 50% 가까이로 올라갔고, 자민당 중심의 정권을 바라는 여론도 탄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선거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특별한 돌풍을 예상하기 어려워 고이즈미 총리의 무난한 정권연장이 점쳐지고 있다.
■그의 중의원 해산이 단순한 배수진이거나, 우발적 구상이 아님은 준비된 ‘저격 공천’에서만 읽히는 게 아니다. 선거일을 ‘9ㆍ11 테러’ 4주년과 맞춘 것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중 양국의 요구에 그토록 집요하게 버텨 온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를 보류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모든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러고도 불안이 남았던지 ‘자민당+공명당 과반수’를 선거승리의 기준으로 잡았다. 해산 직전 283석이 241석으로 줄어도 승리라는 주장이다.
■무늬만 ‘정치적 도박’이지 탄탄대로 걷기다. 흔히 그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의 유사성이 거론되지만 이런 치밀한 칼 갈기는 결정적 차이다. 대중의 변화 욕구를 개인의 인기로 끌어들여, 정치권의 변방에서 순식간에 안마당으로 치고 들어온 권력장악까지는 같다. 그 후의 내용이 불분명한 개혁 외침이나 강한 고집도 비슷하다.
다만 고이즈미 총리가 여론 흐름을 정확히 읽고 제한된 ‘총리의 권한’을 활용, 정국을 주도하는 반면 노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도 여론과 동떨어진 채 제도와 상황만 탓하고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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