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은행들의 경영행태를 보면 이래도 되는가 싶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올 상반기 말로 293조원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기업여신 총액 287조원을 앞질렀다. 예금보험공사의 분석에 의하면 이들 은행의 올 상반기 당기 순이익이 6조4,000억원에 달해 이 또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은행에 대해 너그러운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정부가 더 이상 은행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 어려운 실정을 감안할 때 은행의 부실화를 막을 수 있는 은행의 수익성 추구를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외환위기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과 국제적인 인수합병(M&A)의 결과이며 금융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청신호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은행들 수익성 추구만 눈독
반면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을 9개나 가지고 매출액의 80%를 해외 시장에서 올리는 삼성전자의 상반기 순이익이 3조원을 조금 넘는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황당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포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세계 1위의 정보통신 기업이다.
2004년 순이익이 94억 달러에 달해 2위인 IBM(84억 달러), 3위인 마이크로소프트(81억 달러), 4위인 인텔(75억 달러)을 따돌렸다. 그런데 국내시장을 수익기반으로 하는 국내은행의 당기 순이익이 세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2배를 넘는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국내 기업과 국내 가계에 돌아가야 할 소득을 가로챈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외국자본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시중은행의 경우 배당이나 매각을 통해 이익의 절대 부분이 해외로 빠져 나갔고 앞으로 계속 빠져나갈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시각이다.
은행은 예대금리차와 수수료를 수익기반으로 한다. 정부는 통화 정책과 허가를 통해 이러한 수익기반을 보장해 주고, 라이선스를 받은 사람만 은행 영업을 하게 함으로써 진입 자체를 제한한다.
말하자면 땅 짚고 헤엄치기를 보장해 준다. 그뿐인가? 예보공사를 통해 예금의 원리금을 보장해주고, 은행이 유동성의 어려움에 처하면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 기능(Lender of Last Resort)’을 동원해 지원에 나선다.
이 모든 특혜적 조치는 ‘공공적 금융 기능’을 위해 존재한다. 저축 동원, 자금의 효율적 배분, 기업경영자 감시와 통제, 실물 투자, 정보의 수집과 분산, 거래 비용의 절약 등을 통해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에 기여하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경기가 좋을 때는 돈을 가져다 쓰게 하고, 경기가 조금 나빠지니 마구잡이로 회수해 경기를 고꾸라지게 했다. 경제활동인구의 15%에 달하는 400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더니, 이제는 부동산 투기의 배후조종자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공공적 금융 기능은 완전히 실종된 것 같다.
●'국민경제 안정'에 기여해야
일부에선 기업투자가 전반적으로 부진하기 때문에 은행이 기업대출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된다면 은행의 기업대출도 다시 늘어나지 않겠느냐며 최근의 은행 행태를 일시적 현상으로 돌린다.
하지만 외환 위기 이후 8년간 실물투자의 경험, 정보의 수집과 분산 등 기업금융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외면해 온 은행들이 앞으로라고 해서 잘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투기자본이 장악한 모 은행의 경우 중소기업에 대해 무차별적인 자금 회수가 있었다는 얘기가 들리는 게 현실이다.
천편일률적인 신용 평가 시스템의 도입을 통해 대출을 결정하는 것이 선진 금융인 양 착각하는 은행이 존재하는 한 은행산업의 선진화나 경쟁력은 멀어 보인다. 기업과 개인의 호주머니를 털고 정부의 규제에 기대어 배를 불리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토론과 획기적인 정책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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