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홍모(64)씨가 검찰ㆍ경찰ㆍ언론 외에 정치권 군 세무서 세관 구치소 금융기관 등에 전방위로 금품을 뿌린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대부분 우리 사회의 힘있는 기관들로 홍씨의 일기장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직무관련성이나 금품ㆍ향응의 규모를 떠나 거센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경찰 수사보고에 따르면 홍씨는 정치권에도 손을 뻗칠 정도로 거물급으로 행세해온 것으로 보인다. 홍씨 일기장에는 홍씨가 국회의원 2명과 보좌관 1명 등 3명에게 모두 합해 380만원 상당의 금품 또는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돼 있다.
경찰은 해당 의원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홍씨의 로비력이 어디까지 미쳤는지 간접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홍씨는 인력송출비리 외에 재건축조합 사업 등에도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이 과정에서 정치권에 인ㆍ허가 청탁을 했을 개연성이 있다.
홍씨는 무엇보다 수사기관의 인맥을 챙기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기장에는 검찰 인사 4명에게 가장 많은 3,100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돼 있다.
경찰 쪽에도 총경 2명을 포함, 모두 6명과 어울리며 650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평소 홍씨가 수사기관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녔다는 첩보 내용에 비춰 보면 이들에게 실제 사건 무마 청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홍씨가 관리한 대상은 이외에도 군인과 세무서ㆍ세관ㆍ구치소ㆍ시중은행 직원 등을 망라하고 있다. 대부분 일반인이 상대하기 어렵고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기관들이어서 홍씨가 각종 민원해결을 미끼로 의뢰인들로부터 돈을 챙겼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홍씨가 제출한 일기장의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인 만큼 관련자들을 상대로 조사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일기장에 있다고 해서 바로 직무와 관련해 금품ㆍ향응을 수수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면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올해 초 홍씨가 검ㆍ경ㆍ언 인사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거물 브로커로 소문이 나 있는 홍씨의 집을 3월 압수수색 했으나 특별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홍씨는 4월 네팔인 L(34)씨로부터 한국에 인력을 송출하는 업체로 지정받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받은 1억3,000만원의 사용처를 추궁당하자 따로 보관하고 있던 문제의 일기장을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본래 의도와 달리 사건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4월 말 돌연 잠적했으나 이달 14일 전북 전주시에서 검거됐다.
한편 홍씨의 일기장에 기재된 검ㆍ경 관계자들은 “홍씨를 알지만 금품수수는 결코 없었다”며 연루의혹을 부인했다. 한 검찰 간부는 “20년 전 홍씨를 처음 만나 친하게 지냈지만 최근 1년 사이에는 만난 적이 없다”며 “2003년 홍씨가 자신이 고소당한 사건의 선처를 부탁했지만 주임검사에게 ‘억울함이 없게 해주라’는 의례적인 말만 했고, 결국 홍씨는 나중에 기소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간부는 “8년 전 홍씨를 처음 만났고 그 뒤 1번밖에 안 만났다”며 “돈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총경급 경찰 간부 2명도 홍씨가 지인이었다는 사실은 시인했지만 “접대나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조사대상이라면 직접 나가서 밝히겠다”고 말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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