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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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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입력
200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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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석구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온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제자인 오두진씨와 함께 커피에 대한 책을 발간했다는 점은 일견 의외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300원 하는 자판기 커피도 있고 4,000원이 넘는 스타벅스 커피도 있다.

아직 대다수 사람들은, 특히 연배가 높을수록 달달한 자판기식 커피를 더 좋아한다. 다방커피 혹은 파출부가 주인 몰래 진하게 타서 마셨다 해서 파출부 커피로 불리는 인스턴트 커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다.

한국인의 커피 취향과 문화는 각 시대상을 반영한다. 인스턴트 커피 하나만 살펴 봐도 알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의 보편화는 한국전쟁의 산물이다. 서민들이 본격적으로 커피를 맛본 계기가 미군의 야전용 봉지 커피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자들이 커피에 너무 많은 설탕을 넣는 모습에 외신 기자들이 깜짝 놀라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 사람들은 설탕을 먹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물자가 귀한 시절이라 미군 부대에서 나온, 설탕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인스턴트 커피는 부의 상징처럼 통했고 우리의 입맛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마니아는 고종이다. 아관파천 때 커피 맛을 처음 본 고종은 덕수궁 내에 지은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건물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당시 커피는 서양문물의 상징이었다. 일제 치하의 커피는 엘리트의 상징이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다방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시대와 낭만을 이야기했다.

오늘날의 커피가 무엇을 상징하는가는 저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이다. 젊은 세대들은 세련된 커피 취향을 자랑하며 제대로 된 로스팅과 추출과정을 거친 스타벅스 같은 전문점 커피를 고집한다.

미국 본토 취향에 가깝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이다. 더불어 인스턴트 커피 같은 건 커피도 아니라 말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각기 다른 커피 취향이 ‘잘 살아 보세’를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맸던 기성세대와 풍족함 속에서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온 신세대 간의 세대 차이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 같다. 간편하고 구식이지만 근대화를 위해 헐레벌떡 달려온 이들의 땀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인스턴트 커피에도 괜히 정이 간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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