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9시4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앞. 정문에 겹겹이 쳐있는 바리케이드 앞으로 비상등을 켠 그랜저 승용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승용차 4대와 승합차 1대, 소형버스 1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량에는 서울중앙지검 유재만 특수 1부장과 검사 7명, 수사관 등 40여명이 굳은 표정으로 타고 있었다. 10여분 전부터 정문 앞을 서성거리던 국정원 직원 5명은 별도의 신분확인 절차 없이 미리 준비해둔 방문증을 차량마다 1장씩 교부했다.
검찰 차량들은 곧장 청사 안으로 직행했다. 이들이 국정원 정문을 통과하는 데는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에 대한 첫 압수수색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상초유 압수수색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에 대비해 미리 팀을 구성해 분야별로 역할을 나누고 사전 교육까지 마친 뒤 전날 밤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았다. 영장에 ‘몇 층 몇 호’식으로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지만 ‘도청을 한 곳’ ‘도청장비 설치장소’ ‘예산관련 부서’ 등 상황이나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압수대상을 기재했다.
또 외부 통신장비 전문가들을 압수수색팀에 포함시켜 현장에서 감청장비의 존재여부 및 휴대폰 감청가능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국정원은 매우 넓다. 확인된 것도 없이 그냥 들어갔다가 헤매는 사이에 (증거를) 다 치워버린다”며 “성과를 거두기 위해 가장 효율적 방법이 뭘까 고민하고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한 뒤 적절한 시점을 택했다”고 말했다.
압수수색은 2002년 10월 해체된 도ㆍ감청 담당부서인 과학보안국의 후신 조직과 도청자료를 보관ㆍ폐기했던 장소에 집중됐다. 또 국정원의 합법 감청시설에 대해서도 민간인 통신장비 전문가가 꼼꼼히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대검에서 컴퓨터 분석 전문가를 지원받았으나, 국정원 PC는 단말기와 화면만 있는 폐쇄형이라 통상의 경우처럼 하드디스크를 떼어 오지는 못했다. 국정원측은 압수수색에 협조적으로 응하면서도 국정원 직원이 수색 과정에 일일이 동행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정원 청사를 찍는 사진기자들과 이를 막는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공법 선택 검찰은 김승규 국정원장이 5일 “압수수색도 감수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국가기관을 강제 수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국정원 특성상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며 압수수색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던 검찰이 정공법을 선택한 것은 전ㆍ현직 국정원 간부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국정원이 제출한 불법감청 관련 자료가 극히 부실했기 때문이다. 또 전문가들조차 휴대폰 감청가능성을 두고 설명이 엇갈리자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국정원 내 감청장비 설치여부를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과 있을까 국정원은 2002년 3월 불법도청을 중단하면서 관련 장비를 모두 폐기했으며 도청테이프, 녹취록 등 도청자료도 당시 1개월 단위로 소각했다고 밝힌 바 있어 압수수색이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이번 압수수색이 불법감청 실태에 대한 수사의 진척이 더뎌지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에서 실시됐다거나 여론의 압력에 밀린 ‘체면치레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국정원 전체가 압수수색 대상인 것으로 보여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도청조직이 새롭게 드러나는 등 의외의 성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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