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내면 백두산도 북측 육로와 공로를 타고 둘러볼 수 있게 될 모양이다. 곧 시범 관광이 시작된다고 한다. 7월20~25일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에서 열린 ‘남북 작가 대회’ 일정 중 둘러 봤던 백두산의 감상기를 적었다. /편집자주
모든 절정(絶頂)의 잔야(殘夜)는 날빛에 대한 기약의 덧없음으로 아름답다. 그 애틋한 기다림 끝에 먼 구름장 위로, 거짓말처럼 해가 솟는다. 몸을 열어 고귀한 생명을 비릊듯, 숨이 멎고 맥이 풀린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탄성은, 탄성이 아니라 신음이다. 그 날(23일) 백두의 해는 그렇게 찬란하게 신생했다.
일행이 수더분한 촌색시 같던 양강도 삼지연 베개봉호텔을 벗어난 게 새벽 4시였다. 25인승 미니 버스의 전조등이 막 이울던 만월의 달빛을 찢으며 삼지연 숲길을 내닫는 동안, 우리는 길 따라 끝 없이 도열한 이깔나무 숲만을 응시해야 했고, 빛 조차 스미지 못하는 그 삼엄한 숲 너머 어둠의 공간을 상상해야 했다.
40분 남짓 달렸을까. 어느 새 길 가의 숲이 헐거워졌다. 동시에 버스도 좌우로 꿈틀대며, 더러 눈을 붙였던 이들을 흔들어 깨운다. 김으로 부예진 차창을 닦아보지만, 아직 사위는 푸르게 어둡고 시계(視界)는 애닯게 얕다.
땀 한 방울 소모하지 않고 오르는 백두 노정(路程)은, 상상으로 안달하고 조급하고 부푸는 마음의 노정(勞程)이었다.
5시 10분, 버스가 멎는다. “저 너머가 천지(天池)입네다.” 천지는 그림으로 영상으로 익히 봐 온 그 풍경 그대로였다. 티 한 점 없이 투명한 태고의 비경. 초대형 초고화질 스크린 앞에 선 듯, 실감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 북측 안내원에게 들떠 묻는다. “여기기 진짜 천지예요?”
안내원 역시 사위의 풍광에 홀린 듯 웃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먼 대륙의 벌판 어디쯤서 발원했을 원시의 차고 거친 바람은 2,500㎙급 16개의 봉우리를 타넘어 천지의 살에 부딪치고 솟구쳐, 벅차고 숨가쁜 일행의 가슴을 치고 휘감았으나, 그래서 이가 얼얼하고 턱은 덜덜 떨렸으나, 누구 하나 바람과 추위 피해 버스로 숨어 들지 않았다. “이제 난, 저 속에 용이 산다고 해도 믿을 거야.” 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우리의 상상은 실체 앞에서 더욱 부풀었다.
절정은 날빛을 가장 앞서 맞이하는 자리다. 갓 솟는 해는 어린 짐승처럼 순해서, 인간의 여린 망막에도 제 몸을 온전히 드러낸다. 해는 20여 분 뒤, 향도봉(2,712㎙) 오른편 어깨를 딛고 솟았고, 일행은 그 해를 오래 말 없이 응시했다.
어느새 날은 충분히 밝고 맑아, 백두가 거느린 웅장한 하늘과 땅과 광활한 숲이 한 눈에 요연하다. 저 먼 공간 너머로 장백의 힘줄, 대간의 맥이 남으로 북으로 줄달음치고 있으리라.
일행 대다수는 걸어서 10여 분이면 닿을 주봉(장군봉ㆍ2,750㎙)을 오롯이 남겨둔 채, 애절한 약속처럼 눈으로만 더듬다 버스에 올랐다.
차가 오르내린 길은 화산석 벽돌로 다져 만든 듯했고, 그 길 따라 오색 들꽃들이 한 뼘도 안될 키로 바람에 흔들리며 그림 같은 풍경을 짓고 있었다. 백두의 너른 용암자락(4만5,000㎢)은 그것만으로도 보석처럼 고와서, 스쳐 가는 인연이 내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여행수첩
백두에 오르는 길은 삼지연과 혜산에서 시작해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남측 관광객에게 개방될 노선은 삼지연 코스 가운데 하나가 될 듯하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삼지연공항까지는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로 1시간쯤 걸린다. 공항~베개봉호텔은 버스로 25~30분 거리. 곧게 뻗은 이깔나무와 전나무 숲길(갑무경비도로ㆍ갑산~무산 군용도로)이 장관이다.
백두산 관광은 날씨가 최대 변수다. 눈ㆍ비가 많고 안개와 구름이 자주 낀다.
평균기온 영하 8.3도(18~영하 47.5도), 9월 초부터 눈이 오기 시작해 하순부터 얼고, 6월초부터 녹는다. 천지는 대기강수와 광천수로 이뤄진 화구호다. 둘레 14.4㎞, 면적 9.165㎢, 최대 깊이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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