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청(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이 철도청장 재직시절 직원 포상금 등으로 편성된 예산을 판공비로 전용, 청와대 인사수석실, 감사원의 철도청 담당부서, 노사정위원회와 기획예산처 고위간부, 다수의 국회의원에게 수십만~수백만원씩 주는 등 고위층 챙기기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홍만표 부장검사)는 16일 유전개발 의혹 사건에 대한 보강조사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전 차관이 전용한 직원 포상금 등은 모두 수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철도공사의 예산집행 내역검토와 철도공사 실무자 소환 조사를 통해 김 전 차관이 철도청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8월 부하직원을 시켜 포상금이나 정원가산금(직원의 사기진작이나 경조사에 사용하도록 책정된 예산) 등을 빼내 노사정위 고위간부에게 휴가비 명목으로 50만원, 국회사무처에 업무협조비 명목으로 100만원을 준 사실을 확인했다.
김 전 차관은 고위공직자 인사권을 가진 청와대 인사수석실에도 잊지 않고 ‘성의’를 표시했다. 직접 연관성은 알 수 없지만 그는 지난해 9월 건교부 차관에 임명됐다.
감사원의 철도청 담당 부서에도 철도청 감사관실 직원을 통해 돈을 주었다. 감사원은 수개월 후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사건 감사에 착수했지만 부실 조사 논란에 휘말렸다.
정치인들에게도 돈이 갔다. 열린우리당 J, K, L의원과 한나라당 K의원, 전직 L의원 등 여야 전ㆍ현직 국회의원들에게 병원비나 철도청 담당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인사치레 명목으로 100만원 안팎씩 제공됐다. 기획예산처 고위간부, 경찰서장, 건교부의 간부, 일부 방송사 기자 등도 김 전 차관의 관리 대상자 목록에 올라 있었다.
김 전 차관의 이 같은 전방위 금품제공은 공직사회의 잘못된 판공비 관행과 공직사회 내부의 부패 구조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도 온존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직원 격려 목적으로 할당된 포상금과 정원가산금을 빼내 고위층을 챙기는데 사용한 것은 공직자들의 도덕 불감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사용처가 직무와 관련된 것인지, 배임죄에 해당하는지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검찰 조사에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업무 협의차 만나 식사비 등을 낸 적은 있으나, 불법적인 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변호인은“기관장이 외부에 성의 표시를 할 일이 있을 때 직원들에게 어느 예산 목록에서 가져오라고 하지는 않는다”며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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