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가장 사고가 많은 중앙고속도로 남원주~홍천(왕복 100km) 구간을 기자가 30여일 간 지켜본 결과 로드킬은 통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목격한 야생동물의 사체는 대부분 형체도 없이 부서져 있었고 조류나 양서류 등도 상당수에 달했다. 고라니, 들고양이, 너구리, 토끼, 청설모 의 사체를 직접 확인한 것을 비롯해 죽은 소쩍새(천연기념물 324호)나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호), 황조롱이, 까치, 산비둘기 등도 볼 수 있었다.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은 차량들의 질주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가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에서 곡예하듯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찔하다 못해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고속도로에 나오는 야생동물들은 대부분 중앙분리대에 의해 가로막힌 후 도로 위에서 헤맨다. 야행성이기 때문에 차량불빛에 노출되면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는다. 피하기는커녕 그 자리에 멈춰서거나 방향을 잃고 뛰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7월 11일 밤 12시경. 어둠 속에서 토끼 한 마리가 중앙분리대를 따라 뛰고 있었다. 뒤쪽에서 승용차 서너 대가 달려왔고 토끼는 갓길 쪽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방향을 바꾸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토끼는 차선 위에서 나뒹굴었다. 그 후 몸뚱아리가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류대봉 야생동물보호협회 강원지부장은 “야생동물이 시속 120km 이상으로 달리는 차에 치이면 즉사할 수밖에 없다” 면서 “운 좋게 구조되더라도 생존율은 30%도 채 안 된다”고 말했다.
로드킬 발생은 전 국토를 바둑판처럼 가르는 도로망이 생태계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기 때문이다. 유일한 대안인 생태통로와 유도펜스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전국의 고속도로에 설치된 생태통로는 14곳뿐. 한국도로공사는 건설 중인 고속도로에 48개의 생태통로를 더 설치할 예정이다. 또 올해 처음으로 유도펜스 설치에 자체 예산 40억원을 편성했다. 유도펜스란 도로 위로 횡단하려는 야생동물을 도로 밑을 지나는 수로박스나 생태통로 등으로 유도하는 철망을 말한다. 도로공사는 중앙선과 영동선 등 99곳의 사고다발 지역에 우선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40억원으로 설치할 수 있는 펜스의 길이는 고작 52km. 앞으로 해마다 예산에 반영할 예정이라지만 고속도로 총 연장이 2,800km인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정부의 예산지원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백두대간보전회 김정호 사무차장은 “생태통로 예산을 환경부가 아닌 건교부가 주관하는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한 곳당 설치비가 15억원이나 드는 생태통로를 마구잡이로 설치하는 것보다는 생태통로 겸용으로 제작된 수로박스와 유도펜스를 되도록 많이, 긴 구간 설치하는 것이 보다 더 효율적일 것” 이라고 지적했다
글·사진=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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