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루루공주’를 두고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설마 작가가, 태어나서 한 번도 떡볶이를 못 먹어봤다는 희수(김정은)나, ‘바람둥이 철칙’을 읊으며 자신이 바람둥이임을 온 동네에 알리고 다니는 우진(정준호)을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을까.
‘루루공주’는 재벌 2세가 아니라 현실에서 공주에 가장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재벌 2세를 통해 공주의 삶을 그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희수의 환경 자체가 공주와 닮지 않았는가.
희수를 자기 목숨처럼 지키려는 기사 겸 보디가드, 철저하게 관리되는 사생활, 게다가 집은 정말 성처럼 막혀있다. 황당한 만화나 할리퀸 로맨스같은 소설도 재미있을 때가 있듯, 비현실적인 공주님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다.
문제는 ‘루루공주’가 그래도 재미없다는 것이다. 비현실적이어서 재미없는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희수는 떡볶이조차 못 먹어본 재벌 2세지만, 실상 그가 먹는 음식은 조금 화려한 식기에 담겨있을 뿐 그리 ‘럭셔리’ 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정성스레 만들고 찍은 케이크들이 더 예뻐 보인다.
‘한국 최고’ 재벌그룹의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찬호(김흥수)는 희수를 위해 폭죽을 터뜨리려고 묵고 있는 호텔 투숙객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그런데 어쩌나.
현실의 어떤 재벌은 해외 스키장까지 통째로 빌린다는데. 어디 그뿐인가. 바람둥이 재벌이라는 우진이 희수와 고작 한다는 게 야구연습장에서 타격 연습하기, 한적한 공원에서 이야기하기, 클럽 가서 춤추기가 전부다. 차라리 여자 친구에게 기발한 이벤트를 해주는 현실의 남자들이 더 멋져 보일 지경이다.
게다가 평소엔 그토록 희수를 옭아매던 집안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희수가 데이트할 때는 모두 사라진다. 아무리 봐도 재벌이라기보다는 그냥 좀 사는 집에서 자식 과잉보호 시킨 것 같다. 제작진도 이를 의식한 듯 지난 주에는 ‘350만원짜리’ 드레스도 찢어봤지만, 너무 잘 살아서 떡볶이도 못 먹은 공주님에게 350만원은 차라리 쩨쩨하다.
타이틀에까지 공주를 내걸었지만 우리 ‘평민’들의 눈이라도 호강 시켜줘야 할 화려한 판타지는 없고, 희수가 공주라는 증명은 오직 그가 ‘순진무구’하다는 설정밖에 없다.
그 탓에 판타지라 하기엔 볼품없고, 현실성을 느끼기엔 어처구니 없다. 재벌의 정치권 비자금 상납으로 시끄러운 요즘 순진무구한 재벌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설정만이 두드러진다.
트렌디 드라마가 공주처럼 사는 재벌가의 딸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그 이야기에 몰입하려면 그 공주님의 삶은 TV안에서나마 실감나는 ‘현실’이 되야 한다.
그러나 ‘루루공주’의 희수는 그저 김정은의 또 다른 캐릭터처럼 보인다. 혹시 제작진은 주인공이 떡볶이만 먹을 줄 모르면 다 공주님이 될 거라고 착각한 걸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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