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간 일본을 좌지우지해온 파벌정치가 종말을 고하려 하고 있다. 단기필마 정치를 고집해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휘두른 큰 칼에 파벌보스들의 목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우정개혁법안 반대 세력의 핵심이었던 자민당 가메이파의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전 정조회장은 15일 파벌 회장에서 물러났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의) 공포정치 강권정치를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고 밝혔다. 말이 사임이지, 내용은 밀려난 것이나 다름 없다.
총선을 앞둔 파벌 소속 의원들은 “반 개혁이미지가 굳어진 가메이파 간판으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보스를 향해 반기를 들었다. 더욱이 가메이 전 회장이 아끼던 니시카와 교코(西川京子) 전 의원은 고이즈미 측에 포섭돼 반대파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한 ‘자객’으로 공천됐다.
한 때 고이즈미에게 한 방 먹였다고 의기양양했지만 가메이 전 회장의 정치생명은 풍전등화다. 가메이파는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12명의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가메이 전 회장은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지만, 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고 고이즈미 총리는 그의 지역구에 거물 후보를 표적 공천할 것이 확실시된다.
다른 주요 파벌도 대부분 빈사상태다. 다나카파의 흐름을 이어받은‘자민당 본류’이자 최대 파벌인 구 하시모토파는 2003년 9월 고이즈미 총재 선거를 계기로 분열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는 지난해 불법 정치자금 사건과 관련해 파벌 회장직을 내놓았다. 이번 우정해산 정국에서도 와다누키 다미스케(綿貫民輔) 전 중의원 의장 등 파벌내 실력자들이 반대파로 가담해 당선이 위태롭다.
당내 랭킹 3위인 구 호리우치(堀內)파도 우정법안 심의 과정에서 회장 공백 상태를 초래하는 등 비슷한 상황이다. 9ㆍ11 총선 이후 고이즈미 총리가 소속된 모리파가 제1 파벌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이 또한 모리 요시로(森喜郞) 전 총리의 리더십이 예전 같지 않다.
중선거구 아래서의 자민당은 공천권과 금권, 인사권을 거머쥔 파벌들의 연합체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의 선거제도 변화와 “낡은 자민당을 부셔버리겠다”고 호언한 고이즈미 정권의 등장으로 급속히 약화했다. 소선구제는 보스들로부터 공천권을, 정당보조금제도는 금권을 빼앗았고, 고이즈미 총리의 의회 해산은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 하고 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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