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싫증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다. 책략가로 이름난 리처드 닉슨은 일찍이 이런 경구(警句)를 남겼다. 대통령이 된 그는 중국과의 수교 등 뛰어난 외교책략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도청 스캔들에서 위선적 정치책략과 거짓된 교언(巧言)으로 국민을 싫증나게 했고, 끝내 탄핵 위기에 몰려 사임했다.
●이기적 책략의 대연정 제안
도청 태풍 속에 노무현 대통령이 던진 대연정 제안을 둘러싼 논란에서 닉슨의 역설적 교훈을 떠올렸다. 지역구도 극복을 앞세운 깜짝 제안을 여론은 한갓 정권 재창출을 노린 책략으로 쉽게 분별하는 세상 이치가 오묘하다. 누군가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고 비웃었지만, 국민의 안목을 가리지도 못하는 책략을 구사해야 하는 대통령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싶다.
대통령은 제안의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이내 말을 바꿨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이 못내 아쉬운지 연정 제안은 유효하다고 다시 핵심을 흐렸다. 이쯤 되면 짜증스럽지만,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 조잡해 그냥 지나친 연정 제안편지를 다시 살핀다. 사명감에 겨운 것인지 이기심이 넘친 탓인지, 진정성을 판단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대통령은 세계 어느 나라도 여소야대로 국정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전제부터 궤변이다. 내각책임제에서는 애초 여소야대를 얘기할 게 없고, 대통령제에서는 의회가 언제든 여소야대가 될 수 있지만 연정을 도모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도 대통령제의 원조 미국은 본보기가 될 수 없다며 프랑스를 모델 삼는 것은 상식 밖이다.
프랑스는 헌법의 권력구조 자체가 2원집정부제이고, 대통령 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르면 불가피하게 동거정부가 된다. 이걸 굳이 본받겠다니 위헌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과 논리가 뒤틀린 글을 일일이 시비하는 것은 부질없다. 다만 대연정 성공사례로 내세운 외국의 경험이나마 제대로 살피는 게 좋겠다. 역사적 사실마저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가 2차 대전 패전 뒤 60년대까지 좌우 대연정을 택한 것은 과거 내전까지 겪은 이념대립과 외세점령의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이 것으로 안정을 이뤘으나 정치사회적 변화를 막아 지금껏 이념 갈등에 시달린다는 것이 그들 자신의 반성이다.
서독의 1960년대 대연정 경험도 비슷하다. 성장이 둔화하고 베를린장벽 이 생긴 위기상황에서, 전후 줄곧 집권한 보수 연정마저 노선갈등으로 붕괴했다. 에르하르트에 이어 보수 기민당을 이끈 키징어가 브란트의 좌파 사민당과 대연정을 모색한 것은 이런 국가위기를 벗어나려는 고육책이었다.
대연정은 적대정치 완화와 경제회복에 도움됐으나,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를 재현했다. 정치적 타협과 반대세력 부재가 의회정치를 훼손하고 사회 갈등을 은폐, 국민통합과 사회안정을 해쳤다는 역사학자들의 결론이다.
선거구 개편론은 흔한 이기적 주장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선거구 확대가 소지역주의 완화는 몰라도 지역구도 해소와는 거리 멀다는 상식을 비웃으며 역사적 소명을 말하는 것은 듣기 민망하다. 이기적 책략을 위해 왜곡과 궤변을 일삼은 대통령의 글을 읽어야 하는 현실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국민통합 이끌 덕목 지녀야
대통령이 진정 고상한 뜻으로 연정에 집착한다면, 키징어의 덕목부터 본받았으면 한다. 그는 나치 전력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지성과 절제와 설득력으로 사상초유의 대연정을 일궜다. 또 사심 없는 자세로 이념과 지역과 계층 갈등을 조정, ‘걸어 다니는 중재위원회’로 존경 받았다. 그만한 미덕과 경륜이 있어야 정치세력과 국민이 진정성과 리더십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완고한 지역의 벽을 허물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대통령 노릇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노 대통령을 비롯해 나라와 역사를 이끌겠다는 이들은 자신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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