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국가권력 남용에 의한 반인권ㆍ반민주 범죄에 대한 시효 적용 배제 법률 제정” 발언을 두고 소급입법 논란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발언은 원론적인 의미로 충분히 검토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한나라당은 “헌법질서를 뒤흔드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학계에선 “명백한 소급입법”이라는 의견과 “면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한 문제”라는 신중론이 엇갈리고 있다.
국회 법사위 우리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은 15일 “명백한 국가권력 남용에 의한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문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대통령 입장을 뒷받침했다.
최재천 의원은 “전쟁범죄나 반인륜범죄, 집단학살 등 심각한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국제 인권규범상 공소시효 배제가 사실상 통용되는 원칙”이라며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배제를 논의해 보자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원영 의원도 “충분한 법적 검토를 통해 가능한 테두리 내에서 반인권ㆍ반민주 범죄에 대해 시효 배제를 논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펄쩍 뛰고 있다. 율사 출신인 강재섭 원내대표는 “헌법ㆍ법률 체계를 소급해서 무너뜨리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와서 국가가 어지러워진다”며 “도청사건에 대해 위헌 투성이의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수준을 더 뛰어 넘는 법을 만들겠다는 자의적인 발상은 안 된다”고 말했다.
장윤석 법사위 간사도 “확정 판결을 사후 입법으로 흔들기 시작하면 법적 안정성을 가져 올 수 없게 된다”며 “법도 헌법적 가치 내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소급해서 벌을 가하고 불이익을 준다면 끔찍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법치주의를 넘어선 행태”라고 비판했다.
학자들의 신중론도 적지 않다. 중앙대 법대 제성호 교수는 “소급입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뜻으로 죄형법정주의를 어기는 것”이라며 “또 소급입법으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위헌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시효를 배제하는 것은 대량학살 등에 한하고 있다”며 “국가권력의 남용에 대해 시효를 배제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법대 장영수 교수는 “공소시효가 끝난 사안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진정 소급효는 원칙적으로 안되지만, 생체실험, 대량학살 등 예외적 사안에 한해 인정 될 수 있다”며 “하지만 도청에 대한 소급효 적용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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