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전쟁의 산물이다”
일본군이 자행한 대학살과 성범죄, 강제노동 같은 참혹한 기억이 일본 침략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한국과 중국에서는 여전히 또렷하다. 남아시아는 언뜻 보기엔 전쟁의 상처가 아문 것 같지만, 군사정권과 장기독재의 쓰라린 역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5일 ‘종전 60년’ 특집기획기사에서 전후 아시아는 60년 전 바로 이날 끝난 2차 세계대전과 일본 식민지배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종전은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민족과 국가를 되찾는 계기가 됐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상흔은 아시아의 폐부 깊숙이 파고 들었다.
하와이 동서문제연구소의 정치학자 무티아 알라가파는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일본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내전에 휘말렸고, 냉전체제에 압도됐다”고 말한다.
60년이라는 적지않은 시간 때문에 아시아에서 종전 60년은 일본 패망 기념일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IHT는 1세기에 걸쳐 아시아 리더십을 쥐었던 일본의 시대가 기울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아시아의 패권 균형이 요동치고 있다. 일본의 우익화와 이에 맞물려 한국과 중국에서 들끓는 반일 경향은 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반일감정은 강력하고 해소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올 들어 독도영유권,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는 악화하고 있다. IHT는 일본이 북핵 위기를 명분으로 군사력을 확대하는데 대한 한국 정부의 우려도 상당하며, 남ㆍ북한이 단일한 정체성 구축을 위해 고통스런 일제 강점기의 경험을 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1972년 일본과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의 긴장관계를 맞고 있다. 아시아에서 뜨고 지는 리더십의 파워게임이 긴장의 원인이다. 에너지 등에서 양국의 경쟁도 치열하다. 일본과 긴장이 심화할수록 공산주의를 대체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내셔널리즘을 활용하기 위해 일본 침략의 과거사를 공략할 소지가 높다.
1942~45년 일본에 강점됐던 인도네시아는 최근 불거진 일본군위안부 문제로 과거사 분쟁을 우려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일본에 대한 기억은 이중적이다.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과 산업화 및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일본의 도움이 컸지만, 장기 독재 집권의 정치사 또한 일본의 영향이다.
인도는 영국과 일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던 종전 직전처럼 아시아의 리더십의 향방을 두고 딜레마에 빠져있다. 중국과 파트너십을 갖고 미국의 영향력을 물리칠 것인지, 아니면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전략에 참여할 것인지 고민 중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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