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전 의원의 회고록이 정치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3당 합당 당시 YS에게 40억원을 건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DJ 방미 시 7만~8만 달러를 환전해주었고, 친위쿠데타도 계획했었다”는 등 은밀하고 충격적인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6공의 황태자’로 불렸을 만큼, 적어도 3당 합당 전까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던 그이기에 그 기록을 마냥 무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런데 시선을 끄는 것은 그 뿐이 아니다. 특정 인사에 대한 깎아 내리기와 냉소는 물론 당사자가 이미 고인이 돼 사실여부를 검증할 수 없는 내용, 특히 고인에게는 모욕적인 대목도 군데군데 들어 있다. 여기에 대법원장 면접을 봤다느니, 퇴임위기에 처했던 검사가 자신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편지를 보내와 승진했다느니 하면서 당시 자기의 힘을 과시하는 구절에 이르면 실소가 나온다.
국민으로부터 직접 위임 받은 권력도 아닌, 대통령을 인척으로 둔 덕에 휘두른 권력이 뭐가 그리 자랑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렸다면 당시 상황의 질곡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반성이 우선해야 했다.
이 회고록에는 남의 공과(功過)와 함께 필자의 공 밖에는 없다. 박 전 의원의 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과연 그럴까. 6공 시절에도 우리 정치사가 늘 그랬듯 정치는 국민적 걱정과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 중심에 있던 그가 여기서 자유로울 순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이끌었던 사조직인 ‘월계수회’만 해도 각종 의혹과 논란을 낳았다. 전국적으로 회원수가 100만명이 넘었다는 조직의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조달했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 그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회고록은 회고록 답지 않다
염영남 정치부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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