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대표단의 14일 국립현충원 현충탑 참배는 10초도 채 걸리지 않은 짧은 묵념으로 마무리됐다. 남북간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는 첫 걸음 치고는 단출한 행사라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6ㆍ25 전쟁 희생자가 안치된 현충원에 북측 고위급 인사들이 참배한 것 자체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컸다. 북측 대표단은 “6ㆍ15 시대정신에 맞춰 화해협력으로 나가겠다는 의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짧지만 역사적인 참배 현장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비롯한 32명의 북측 대표단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도착했다. 북측 대표단은 고경석 현충원장의 안내를 받아 현충문 앞에 5열로 도열했고 맨 앞줄에 김 비서와 민간대표단 단장인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섰다. 그 뒷줄에는 대남업무 핵심인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과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현충문에 들어선 북측 대표단은 현충탑 앞으로 천천히 이동했고 국군의장대는 태극기 등을 곧추 세운 채 거총 자세로 예우를 갖췄다. 현충문은 1970년 무장공비가 폭파를 시도했던 현장이다.
6ㆍ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현충탑 앞에 도열한 대표단은 “순국 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라는 고 원장의 구호에 따라 약 5~6초간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일반적 참배 절차와 달리 헌화와 분향은 생략됐다. 방명록에도 글을 남기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간소한 절차에 따라 진행하기로 사전에 합의됐다”고 설명했다.
북측 대표단은 묵념을 마치고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와 현충원을 떠났다. 소감을 묻자 김기남 비서는 “민족의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합시다”라고 말했다.
대표단이 현충원에 머무른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현충원 정문 앞에서는 극우보수단체의 시위가 아침부터 계속되는 등 소동도 벌어졌다.
북 대표단의 참배 의미부여
이에 앞서 김기남 비서는 이날 낮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 도착한 뒤 참배에 대해 “조국광복을 위해 생을 마친 분이 있어 방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6ㆍ25 전쟁 희생자 참배라는 의미 부여에 부담스러워 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임동옥 부부장은 “현충원 참배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고 기본은 이념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성익 부위원장은 일부러 기자들을 찾아 “6ㆍ15 시대정신에 맞춰 화해협력으로 나가겠다는 의지”라고 부연했다.
이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라는 대의는 인정하지만 6ㆍ25 전쟁에 대한 사죄 등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하지 말아달라는 중첩된 메시지로 해석된다. 북측 관계자 어느 누구도 ‘6ㆍ25 전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은 데서 그런 의도가 읽혀졌다.
그러나 참배 그 자체의 역사성이 있는 만큼, 참배 형식이나 북측 대표단의 발언 하나하나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 왜 묵념만 했나/ 北선 참배때 분향 안해
북측 대표단은 14일 묵념만으로 국립현충원 참배를 갈음했다. 현충원의 공식 참배 절차는 헌화, 분향, 묵념의 순이지만, 북측 대표단은 헌화와 분향 을 생략, 5분만에 참배를 끝냈다. 자연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이 같은 참배 간소화는 북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북측의 참배 관행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먼저 분향을 하지 않은 것과 관련,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동상과 혁명열사릉 등 현충시설을 참배할 경우 꽃다발과 꽃바구니로 헌화를 하지만 분향은 하지 않는다고 정부측은 설명했다.
일각엔 현충탑 제단 앞에 놓여 있는 향로가 건군 20주년 기념사업으로 제작돼 테두리에 육해공군 및 해병대 마크가 새겨져 있는 점이 문제가 됐을 것이란 얘기도 나돌고 있으나, 무게는 실리지 않고 있다.
아울러 헌화는 북한 주민들에게 각별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어서 북측 대표단이 헌화엔 부담을 가졌을 것이란 지적이다. 김일성 동상이나 혁명열사릉을 참배할 경우 ‘신심을 다해 존경한다’는 뜻으로 꽃을 바친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따라서 북측 대표단이 6ㆍ25 전쟁 당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위패가 봉안된 현충탑 앞에서 꽃을 바치며 ‘존경’까지 표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참배는 북측이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요청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헌화와 분향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냉전의 잔재를 털어내자는 참배의 뜻이 퇴색됐다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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