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아 아침마다 피었다 저녁이면 진다(君子國 有薰華草 朝生夕死).’
무궁화가 언제부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중국 고대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 있는 이 구절처럼 무궁화는 백성들 곁에서 수천년간 피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나라꽃으로 자리잡았다.
이 땅을 무궁화의 땅으로 불러도 좋을 만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중기(元中記)에는 ‘군자의 나라는 지역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다(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고 했고, 신라시대 최치원이 쓴 국서(國書)에도 우리나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으로 일컬었다. 근화는 무궁화를 일컫는 40여 가지의 옛이름 중 하나로 조선에 들어서도 근원(槿原), 근역(槿域)이란 말이 자주 쓰였다. 조선시대에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어사화도 무궁화였다.
관습적 차원에 머물던 나라꽃 무궁화가 국민에게 국화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1896년의 일이다. 중국 사신을 맞아들이던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짓기 시작하면서 애국가가 처음으로 불려졌고, 이 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후렴부가 널리 알려졌다. 무궁화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 된 것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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