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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 가장 영향력 있었던 인물

입력
2005.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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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교수·이건희 회장 10위권 포진

국가 전반에 걸친 영향력을 평가하는 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압도적 다수로 1위(66.7%ㆍ이하 중복응답)를 차지, 친일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박정희 향수’를 뒷받침했다. 뒤를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13.8%) 김 구 선생(12.3%)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9.5%) 이승만 초대대통령(7.4%) 전두환 전 대통령(6.4%)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3.5%) 이건희 삼성그룹회장(2.0%) 노무현 대통령(1.6%) 김영삼 전 대통령(1.0%) 이 10위 권에 포진했다.

독립투사는 상하이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한 김 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 등 두 명 뿐으로 건국의 중심인물은 이미 역사의 장에 묻히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윤보선ㆍ최규하ㆍ노태우 등 3명은 모두 10위 권 밖에 머무른 데 반해 재벌회장과 세계적 생명공학 연구자가 상위권에 올라 우리 국민의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정 전 회장은 박 전대통령의 근대화이념을 기업을 통해 구현한 점이,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세계 정상의 기업으로 가꾼 능력이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황우석 교수는 세계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와 개(스피너) 복제에 잇따라 성공, 난치병 치유의 길을 개척했다.

최초응답자를 기준으로 할 경우 박정희(57.1%) 김구(10.0%) 김대중(7.3%) 이승만(3.6%) 정주영(3.0%) 황우석(1.8%) 전두환(1.6%) 등으로 나타나 순위에 다소 변화를 보였다.

이기창대기자 lkc@hk.co.kr

■ 정치인부문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71.9%ㆍ이하 중복응답)이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정치인 1위에 뽑았다. 우리 현대정치 60년사에서 무려 3분의 1에 가까운 18년을 집권하면서 축적된 공과가 깊이 각인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는 김대중(26.5%) 전두환(11.0%) 이승만(6.4%) 전 대통령에 이어 김 구 선생(6.1%) 노무현 대통령(4.1%) 김영삼(3.0%) 노태우 전 대통령(1.8%) 김종필(1.7%) 고 건(1.6%) 전 총리 등이 차례로 10위 권을 구성했다. 차기 대통령후보로 거명되는 정치권 인사 중에서는 고 전 총리만이 유일하게 포함됐다. 40년 군사정권을 끝내고 문민정부시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낮은 평가는 외환위기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응답자를 비교하면 박정희(63.6%)와 김대중(13.9%) 전대통령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이 경우에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김종필 전 총리를 앞서며 10위 권에 들었다.

■ 국정수행 평가

‘가장 일을 잘한 대통령(현직 제외)’에 대한 조사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부동의 1위(72.4%)를 차지했다. 2위를 기록한 김대중 전 대통령(18.4%)을 제외하고는 전두환(1.6%) 이승만(1.6%) 김영삼(0.9%) 노태우(0.5%) 윤보선(0.3%) 최규하(0.2%)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낮았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국민 대다수가 그의 집권시절 이뤄낸 경제개발 혜택을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 한편 외환위기 극복과 노벨 평화상 수상 등의 업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광주의 원죄’를 짊어진 전 전 대통령이 정치 관련 3부문에서 모두 상위권에 근접하는 평가를 받아 주목된다.

박 전 대통령은 연령이 높고(40대~60대 80%이상) 학력이 낮을수록(중졸이하 84.1%) 더욱 높은 지지를 받은 반면 김 전 대통령은 젊고(20대 28.8%) 학력이 높을수록(대재 이상 24.6%) 지지도가 올라갔다.

■ 여성부문

고 박정희ㆍ육영수 전 대통령 부부의 장녀 박근혜 한나라당대표가 1위(20.1%ㆍ 이하 중복응답)를 기록, 정치인으로서도 일단 성공적인 궤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 주었다. 또 박 대표의 모친 육영수 여사가 2위(13.3%)를 차지해 모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여성임을 드러냈는데 육 여사는 이상적인 ‘영부인상’의 이미지가 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어 박순천 전 민주당 총재(7.7%) 김활란 전 이대총장(6.0%) 강금실 법무장관(4.8%) 여성운동가인 이태영 전 가정상담법률소장(4.1%) 사채업자 장영자씨(1.7%) 미 LPGA 박세리 선수(1.5%) 김옥길 전 이대총장(1.4%) 장영신 애경그룹회장(1.4%)이 10위 권을 구성했다. 성차별을 극복하고 각계에서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킨 인물이 다수다. 박 전 총재는 여성의 정계진출을 선도한 1세대 정치인이고 이태영 소장은 첫 여성변호사로 여권신장에 앞장섰다. 강금실 전 장관은 첫 여성법무장관으로 법조인의 이미지 개선에 기여했다.

■ 기업인 부문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 정주영 전 회장이 단연 1위(82.2%ㆍ 이하 중복응답)에 올랐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40.0%)과 이병철 전 회장(34.5%)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8.8%) 정몽준 현대중공업회장 겸 아산재단이사장(1.8%) 유일한 유한양행설립자(1.7%) 박태준 전 포스코회장(0.9%) 구본무 LG그룹회장(0.8%) 이명박 전 현대건설사장(0.8%) 최종현 전 SK그룹회장(0.6%)이 뒤를 이어 10권에 들었다.

연령분포를 보면 정 전 회장은 50대(67.2%)를 최고로 전 연령층에 걸쳐 50~60% 안팎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이에 비해 이 회장은 20대(35.8%)와 30대(22.2%) 등 젊은 층에서 인지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주영ㆍ몽준, 이병철ㆍ건희 회장은 부자관계로 한국재벌의 독특한 세습경영의 사례를 잘 보여주는데 영향력에서도 대를 이어가고 있다. 수 십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일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 유일한 유한양행설립자는 누구보다 앞서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을 실천하는 모범을 세웠다.

■ 문화·예술인부문

1, 2위로 세계 속의 한국을 빛낸 음악가들이 꼽혔다. 성악가 조수미(13.3%ㆍ이하 중복응답)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로마의 라 스칼라, 런던 코벤트가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등 세계 정상급 오페라극장의 프리마돈나로 활동해온 그는 마에스트로 카라얀으로부터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신이 내려준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7.5%)이 2위에 올랐다. 1974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1등 없는 2등을 차지한 그는 89년에는 프랑스의 국립 바스티유오페라극장 음악총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으면서 정상급 지휘자로 인정 받았다. 이번 광복절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가 된 뒤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는다.

3위로 뽑힌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6.1%)은 전위예술의 살아있는 신화다. 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TV전’은 TV를 소재로 활용한 최초의 전시였다. 4위는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4.3%), 5위는 ‘취화선’으로 2002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3.4%), 6위는 박찬욱 감독(2.5%)으로 조사됐다. 박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가 8월31일 개막하는 제6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면서 임권택 감독에 이어 세계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모두 진출한 두 번째 한국감독이 됐다.

92년 데뷔해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대중음악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서태지와 숱한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가 이문열씨가 각각 2.3%로 공동 7위에 올랐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2.0%), 2003년 타계한 판소리 박동진 명창(1.7%)이 뒤를 이었다.

박석원 기자 sprk@hk.co.kr

■ 연예인 부문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국민가수 조용필(19.0%ㆍ이하 중복응답)이 선두로 꼽혔다. 2위는 한국 성인가요의 역사나 다름없는 ‘동백아가씨’의 이미자(14.7%), 3위는 ‘난 알아요’란 곡을 통해 국내 최초로 랩을 정착시킨 서태지(10.6%)로 조사됐다.

이들 3명은 각각 1980년대와 70년대, 90년대 가요계를 상징하는 세대 대표가수 성격을 띄는 게 특징이다. 특히 서태지의 경우를 보면 세대간 대중음악의 정서가 얼마나 판이한지 엿볼 수 있다. 20대(25.6%)로부터 몰표를 얻는 서태지는 60대 이상에게 0%라는 극단적 수치를 드러냈다.

4위와 6위에는 일본내 한류열풍의 슈퍼스타들이 자리했다. 지난해 일본 NHK에서 ‘겨울연가’가 방영되면서 일본 여성의 최고연인으로 떠오른 ‘욘사마’배용준(9.8%)과

만 13세의 나이로 가요계에 데뷔해 2001년 일본무대 진출 후 최고 권위의 오리콘 음반차트 정상을 휩쓴 가수 보아(6.6%)가 그들이다.

5위는 ‘수사반장’의 박 반장과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회장’으로 열연한 국민배우 최불암(7.8%)이 차지했다. 7위 밑으로는 나훈아(5.1%) 안성기(4.8%) 신성일(4.2%) 김혜자(3.7%) 등이 뒤를 이었다.

■ 체육인 부문

광복 이후 6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었던 문화ㆍ예술인

국민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체육인은 역시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고 손기정옹(21.9%ㆍ이하 중복응답)이었다. 일제강점기 1936년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올림픽에 출전,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 민족의 기개를 떨쳤던 손 옹은 당시 인간의 한계로 인식되던 2시간30분벽을 깨고 2시간29분19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2위로는 한국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선 박지성(19.5%)이 지목됐다. 박지성은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세계적 스타로 발돋음 할 태세다.

메이저리그의 ‘코리안 특급’ 박찬호(19.0%), 78~89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차붐’으로 활약한 차범근 프로축구 수원 감독(18.0%)이 3, 4위를 달렸다. 손기정 옹의 한을 풀어준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17.0%)은 5위에 랭크됐다. 다음으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통산 22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박세리(12.1%), ‘축구천재’박주영(9.6%), ‘영원한 리베로’홍명보(4.3%) 등의 순이었다. 선수 출신이 아닌 체육인으로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유일하게 9위(3.0%)에 올랐다.

■ 학자·과학자부문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석좌교수가 압도적인 지지(84.4%ㆍ이하 중복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황우석 박사의 그늘이 너무 커 2위부터는 고만고만한 득표율이다. ‘씨없는 수박’을 만든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3.1%). 70년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2.0%), ‘옥수수 박사’ 김순권 경북대 교수(1.5%),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0.5%)가 뒤를 이었다. 당대의 문장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0.4%),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 박사(0.3%). ‘신바람 건강법’의 황수관 박사, 국어학자 한갑수 박사도 10위권에 지명됐다.

황우석 교수팀이 치료용 배아줄기세포를 복제하는데 성공한 것은 난치병 치료라는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복제세포로 만들어낸 장기가 일으키는 면역거부 반응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환자의 체세포를 떼어내 복제함으로써 면역거부 반응이 없는 줄기세포를 배양해 낸 것은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이다. 황우석 교수팀은 최근 세계 최초의 개 복제라는 또 한번의 쾌거를 올렸다.

■ 종교인부문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이 50.1%(이하 중복응답)로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대표적 고승 성철 스님으로 24.4%를 차지했다. 다음은 조용기(6.4%) 한경직(5.5%) 문익환(4.4%) 목사, 법정 스님(2.3%), 문선명 통일교 교주(1.2%), 함석헌 선생(0.9%), 장경동(0.7%) 옥한흠(0.5%) 목사, 오웅진 신부(0.5%) 순이었다.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 시절 민주화와 인권투쟁에 앞장섰으며 서울대교구장 은퇴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씨가 “우리 역사 고난의 갈피 때마다 그 분이 비껴서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행운을 느낀다”고 평한 것처럼 한국사회의 꺼지지 않는 정신적 등불인 것이다. 현대사의 고비마다 돌출된 굵직한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추기경의 한마디는 가늠하기 힘든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山是山 水是水)”는 법어는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급속한 진행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에 빠진 한국인에게 삶의 진면목과, 가치의 참됨을 스스로 묻게 만들었다. 성철 스님은 누더기 가사장삼 한 벌로 청빈과 절제의 삶을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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