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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선, 전통을 벗고 세태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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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선, 전통을 벗고 세태를 품다

입력
2005.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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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예술의 오랜 전통인 수묵화의 현대적 변용과 재해석을 보여주는 한ㆍ중 예술가들의 국제교류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6일 개막한다. 20세기 들어 아시아를 강타한 서양화의 충격과 확장 속에 수묵화의 정체성 위기를 경험한 양국 작가들의 치열한 고민을 엿보게 하는 전시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중국 선전(深川)시의 심천화원(深川畵院) 공동 주최. 선전은 현대 중국 수묵화의 중심지로 공립미술관인 심천화원을 통해 1998년부터 국제수묵비엔날레를 개최, 동시대 세계수묵화단의 흐름을 생생하게 중계하는 역할로 큰 명성을 얻고 있다.

‘동시대성’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출발하는 전시에는 중국과 한국에서 각 20명씩, 모두 40명의 작가들이 참가해 120여 점에 이르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수묵화를 어떻게 현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양국 작가들의 각기 다른 접근 방법을 비교 감상해 볼 만 하다.

기획 총책임자인 김학량 큐레이터는 “서양화 기법이나 재료의 채용, 전통 수묵 기법으로 현대적 메시지 담기 등 다양한 실험을 한다는 점에서는 양국이 비슷하다”면서도 “다만 한국 수묵이 철학적이거나 추상적인 관념을 담는 데 좀 더 비중을 두는 반면, 중국의 현대 수묵은 일상의 풍경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그림에도 반영돼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수묵화는 ‘채색을 쓰지않고 먹으로만 그리는 동양화 고유의 회화 양식’이다. 그러나 전시 출품작들은 먹을 주로 하되 각종 오브제를 붙이고 채색을 하거나 표면 코팅효과를 내는 혼합재료를 사용하는 등 질료의 제약에서 한껏 벗어나 있다.

미술관 1층을 차지한 중국관은 1980년대 중국의 개방 정책 이후 펼쳐진 사회 변화를 반영한 작품들이 주종이다. 떠오르는 신예 판원신(潘汶汛)은 위진남북조시대의 전통 인물화 기법에 현대적인 인물들을 대입시키는 대담한 화풍(‘연꽃 줍는 사람’)으로 눈길을 끈다. 황이한(黃一澣)은 먹을 썼을 뿐, 서양화를 방불케 하는 ‘만화 세대 - 이상한 매력’ ‘중국 신인류’를 통해 대중 음악과 온라인 게임, 영화 등 개방 이후 밀려 들어 온 외래 대중 문화의 범람을 형상화했다. ‘만화 세대~’에는 한류 스타로 인기를 얻었던 가수 문희준의 얼굴도 그려져 있다. 또 저우징신(朱振康)은 ‘인물 사생’에서 목탄 드로잉 기법을 활용한 사실적인 인물 묘사로 수묵화의 지평을 넓힌다.

미술관 2층은 한국관이다. 선택과 집중을 택한 중국관과 달리, 1960년대부터 현대까지 통시적인 수묵화의 변천을 보여준다. 60년대 한국화에 추상의 영역을 확립한 서세옥(‘사람’), 80년대 들어 수묵의 정신성에 가치를 두고 활발히 전개된 수묵화 운동의 정점에 있었던 송수남(‘붓의 놀림’) 등은 물론 서양화 기법을 채용한 장상의(‘꽃비’) 등의 작품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90년대 이후 현대 수묵화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로 전통 수묵의 풍경 속에 현대의 서사를 담은 박병춘(‘흐린 풍경에 서다’), 유근택(‘풍경’) 등이 발길을 붙든다.

미술관은 17일에는 양국 현대 수묵화의 현황과 전망을 점검하는 세미나를 17일 개최한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과 이앤샨츈 심천화원 부원장이 발표자로 나선다. 매일 오후 2시, 5시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시 설명회도 갖는다. 9월18일까지. (02)2124-8928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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