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움직였다’, 누구나 그렇게 말했다. 작년 10월 23일 일본 니가타현에서 발생한 쥬에츠(中越) 지진으로 모든 마을사람이 피난한 후루시촌. 싸움소를 기르던 외양간은 완전히 쓰러지고 계단식 밭이나 비단잉어가 노닐던 연못은 반으로 갈라졌다. 산은 숲과 함께 무너졌다.
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쥬에츠 지진이 일어난 지 9개월이 된 지난달 23일에는 지진 등의 재해를 넘어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딛고 싶은 주민들이 양초에 불을 밝히고 소원을 담아 불꽃놀이를 하는 ‘가와구치 축제’가 열렸다.
바로 이날 내가 살고 있는 도쿄를 포함한 간토 지역에서는 오후 4시35분께, 진도 5의 강진이 일어났다. 일본에 와서 몇 번이고 지진을 경험했지만, 지금까지의 지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큰 흔들림이 있던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날 나는 호텔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가 중이었는데, 이벤트 진행이 중단됐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난 약 10분 후, 오늘은 이후 큰 여진은 없을 것이라는 장내 방송이 나왔고 공포에 질려있던 시민들의 얼굴에 겨우 평온이 돌아왔다.
이날 수도권의 신칸센과 JR(일본철도)선, 지하철이 일제히 멈췄으며 도로 정체로 도쿄 내 교통망은 완전히 마비됐다. 여름휴가와 방학이 시작된 첫 주말이기도 했는데 버스터미널역은 가장 심한 혼란에 빠졌다.
아니나 다를까, 20층 호텔 건물의 모든 엘리베이터 운행이 멈춰 이벤트 장소이던 15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시원한 건물안과는 달리 비상구로 나가 내려오는 계단은 대단히 더웠다. 다들 힘들어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내려왔으며 어떤 아저씨는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지진이 일어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1년에도 몇 번이나 갑자기 찾아오는 재난은 일본인의 삶의 방식이나 심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지진이나 쓰나미로 피해가 난 지역 주민들의 인터뷰를 TV로 자주 보는데, 울거나 소리지르거나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정부의 재난대책에 대해 비판을 할 만도 한데 코멘트의 대부분은 “어쩔 수 없지요(쇼우가 나이)”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위력 앞에 무기력함을 절감하는 인간관과 운명론적인 세계관. 이것이 바로 빈번한 재해를 경험해 오면서 터득한 일본인들의 재난에 대한 기본적 자세이다.
김상미 일본 도쿄대 사회정보대학원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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