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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친절해서 무서운 것

입력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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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설 충남 연기군에 사는 A씨 부부는 주말이면 서울 강남의 G백화점으로 명품 쇼핑을 다닌다. 차는 얼마 전 뽑은 BMW 7시리즈다. 참여정부 들어 갑자기 오른 땅값 덕분에 부러울 게 없게 된 부부는 수백만원대의 쇼핑이 끝나면 인근 초밥집이나 갈비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도곡동으로 향한다.

작년에 이곳에 사 둔 50평형대 아파트의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정부의 부동산대책 때문에 호가도 좀 내렸고 거래도 뜸하다지만 지금 팔아도 5억은 남길 것 같다. “역시 대통령 하난 잘 뽑았어….”

●시장의 복수 '독사 우화'

#2. 옛날 어떤 마을에 독사들이 창궐하는 바람에 나물캐던 처녀들이 물려죽는 일이 빈발했다. 관은 마침내 독사를 잡아오면 포상금을 주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후 너도 나도 독사 포획에 나서자 관은 조만간 독사 구경이 힘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웬걸, 잡아오는 독사가 날마다 더 늘어나는 것 아닌가.

집집마다 불어닥친 독사 사육 붐 때문이었다. 화가 난 관은 그날로 포상금제를 폐지했다. 그러자 처녀는 물론, 애 어른 할 것 없이 독사에 물려 죽어나갔다. 사람들이 집에서 기르던 독사들을 마구 내버렸기 때문이다.

#3. 2001년 말 한 경제전문지가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가운데 ‘16대 대선 후보군 중 시장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다고 생각하는 인물은’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여기서 당시 민주당 고문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1위를 차지했다.

이 결과가 미심쩍어 재차 확인한 결과 “그가 대통령이 되면 적어도 시장을 놓고 장난치지는 않을 것”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노 후보는 “젊은 전문가들이 제 맘을 알아줬네요. 그렇죠, 대통령은 제대로 된 시장의 룰만 만들어주면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첫번째는 항간에 떠도는 만화 같은 얘기이고, 그 다음은 섣부른 정책은 반드시 시장의 복수를 부른다는 우화이며, 마지막은 노무현 대통령의 시장친화성을 강조할 때 인용되는 실화이다. 세 예화는 시장의 작동원리 또는 관리방식에 관한 것으로 최근 우리 경제의 현안과 그를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8월말로 예고된 ‘부동산대책 완결편’부터 보자. 노 대통령이 “부동산에 거품이 들어갔다 꺼지면 시장이고 뭐고 없다”며 전쟁을 선포함에 따라 정부는 거래투명성, 투기이익 환수, 공영개발, 공급확대 등 4대 원칙을 정하고 세부작업을 진행중이다.

A씨 부부는 속이 끓겠지만 합목적성이 분명한 이 방향을 대놓고 비난할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행 총재 입에서 “정치권의 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는 획기적 대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합리성보다 파퓰리즘이 앞서는 방안이 활개칠 것 같다.

독사 우화의 유용성은 여기서 발견된다. 정부는 5만명 안팎의 ‘사회적 암’만 잡아내면 만사형통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시장의 생리상 그 뒤에는 수십만, 수백만명의 투기 혹은 투자예비군들이 늘어서 있다. 400조원을 훌쩍 넘는 단기 부동자금이 갈 곳을 마련해주지 않은 채 ‘정부불패’를 외치는 것은 애널리스트들이 기대했던 노 대통령 모습이 아니다.

요즘 정부가 툭하면 “실물지표의 개선조짐이 뚜렷한데도 언론이 타성적으로 비관론을 부추긴다”고 불평하는 것도 만화나 우화처럼 희화적이다.

‘한국의 어떤 두뇌집단도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양극화 문제를 제외하곤 상황이 나빠진 곳이 없어 주가가 1,000선을 넘었는데도, 그래서 이젠 정책결정과정의 부실화를 초래하는 지역구도를 깰 때라고 여겨 연정을 제안했더니 모두가 반대목소리만 높여놓고도, 정부 뒤통수만 친다는 것이다.

●부동산 대책 직접 홍보?

그렇다면 기업은 투자하기 싫고 가계는 돈을 쓸 여력이 없으며 부자들은 해외 교육ㆍ관광ㆍ의료를 더 선호하는 현실이, 그리고 유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환율이 요동치며 금리가 딜레마에 처한 것이 언론 때문인가.

정부는 이번 부동산대책 홍보비로 43억원을 책정했다. 언론과 정부의 의견이 달라서란다. 룰을 만들고 게임에도 직접 뛰어들겠다는 정부의 의욕과잉이 영화 속 ‘친절한 금자씨’ 만큼이나 무섭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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