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9일 연방기금금리(FFR)를 0.25% 포인트 추가 인상해 3.5%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해 6월 금리인상에 착수한 이래 연속 열번째 인상이다. 경기활황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통상적 목적 외에, 최근 과열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현지 주택 경기를 잡으려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금리인상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그 자체 보다도 미국 정책금리가 우리 보다 높아진 이른바 ‘금리역전’ 상황에 모아지고 있다.
FFR과 우리 콜금리는 최근까지 나란히 3.25% 수준이었으나 이번 조치로 FFR이 0.25% 포인트 높아졌다. 또 FFR은 추가 인상될 가능성이 큰 반면, 국내 콜금리는 당분간 현 수준에 머물러 ‘금리역전’의 폭은 앞으로도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우려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자본의 수요.공급 여건 등에 따라 금리는 통상 선진국일수록 낮고 후진국일수록 높게 마련인데, 이 같은 ‘질서’가 무너지면 국제자본의 흐름에 왜곡이 생겨 관련국에 예기치 않은 재난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멕시코는 1990년대 전반만 해도 남미에서 가장 강력한 신흥시장국으로 꼽혔던 나라이다. 그 멕시코가 1994년말 페소화 위기 끝에 우리보다 3년 앞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대상국으로 전락하게 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도 미국과의 ‘금리역전’이었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선제적 조치’를 명분으로 1년여 동안 연속 금리인상 행진을 벌인 끝에 FFR을 5.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이후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 없는 사상 최장기 호황’을 구가하는 토대가 됐다.
하지만 멕시코에는 93년말 미국 보다 8.41% 포인트 높았던 실질금리가 오히려 0.7% 포인트나 낮아지는 ‘금리역전’ 현상을 야기했다. 바로 이 ‘금리역전’이 페소화 위기를 부른 내.외국인 자본의 ‘멕시코 대탈출’을 촉발했던 것이다.
이러다가 국내에 있는 내.외국인 자본이 조만간 우리나라를 대거 빠져나가는 ‘자본 엑소더스’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우려를 단순히 기우로만 치부해버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당시의 멕시코처럼 우리나라에서 당장 급격한 자본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0.25% 포인트의 금리차는 자본이 기존의 국내 투자계획을 포기하고, 제반 국경이동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추구해야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또한 정책금리의 역전에도 불구하고 실세금리는 아직 우리가 높으며, 원화도 상대적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역전’ 상황은 ‘자본 엑소더스’와 같은 전반적이고 극적인 재난은 아니라도 어떤 식으로든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다. 특히 ‘금리역전’이 새로운 변수로 추가된 이상, 통화당국으로서는 경기회복에 따른 총수요 압력이 확인될 것으로 보이는 올 4분기를 전후해 기조적인 금리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그간의 저금리 기조를 타고 부풀어 오른 자산시장, 특히 부동산 시장은 투기대책에 이어 금리상승이라는 또 하나의 역풍을 당장 맞게 될 것이다.
사실 지난 93년2월 콜금리 인하 기조가 시작된 이래 2년여 동안 부동산시장에서는 일종의 ‘저금리 잔치’가 벌어졌다. 국세청 실태조사를 들 것도 없다. ‘1억5,000만원 손에 쥐고 3억원 빌려 (아파트) 한 채 사뒀더니 1년 새 8억원이 됐다’느니 ‘종잣돈 2억원 쥐고 전세와 담보대출 새끼 쳐서 강남과 목동에 아파트 3채를 사뒀다’는 식의 무용담이 흔하게 나돌았다.
금융시장에서의 ‘자산플레이’를 본 따 저금리의 아파트담보대출을 이용한 ‘부동산 자산플레이’가 웬만한 샐러리맨들까지 가담할 정도로 판을 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식의 ‘저금리 잔치’가 계속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장은 늘 ‘현상’에 앞서 ‘감응’한다. 이미 채권 금리가 들썩거리고 있다. 금리 상승압력의 영향이 시장에 확산되는 시점은 예상보다 빨리 닥쳐올 것이다.
대출에 전세 끼고 여기저기 아파트 사놓은 분들, 나중에 진땀 흘리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 ‘이익실현’에 나서는 게 개인의 신상과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장인철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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