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6자회담 최대 쟁점인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리를 놓고 한미간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감지되고 있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이후 일반적인 핵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정부와 ‘핵 절대 불용’이라는 미국의 입장이 계속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1일 인터넷 언론 ‘미디어다음’과의 인터뷰에서 “농업용, 의료용, 발전 등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 권리는 북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 대목은 심상치 않다.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단계에 이르면 보장된다는 ‘미래의 핵 권리’라고 전제를 깔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특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으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정 장관의 발언이기 때문에 무게도 실려 있다.
그는 또 “미국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리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우리는 미국과 생각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신포 경수로가 아닌 평화적 이용 목적의) 경수로를 짓는 것은 북한의 일반적 권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행정부의 입장과 확연히 구별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9일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며 북한의 민수용 핵 개발에 반대했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도 10일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수로를 포함,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정 장관 발언의 강도는 센 편이다.
한미간 입장 차이가 부각되자 정 장관은 “일반론적 이야기”라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지는 않아 작심하고 말한 대목임을 짐작케 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일단 미국과 북한 모두를 설득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전쟁 패전국도 아닌데 왜 핵 활동을 못하느냐”는 북한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달래는 동시에, 북한의 모든 핵 폐기를 설득할 테니 미국도 한 발 물러나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특히 4차 6자회담 휴회 직전 ‘창의적 모호성’ 개념을 내놓고 북미 양쪽을 설득하려 했던 정부 입장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 같은 입장을 바탕으로 내주 중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나고, 8ㆍ15 행사 참석차 14일 서울을 방문하는 북한의 당국 대표단을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중재 역량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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