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 증세를 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원이 도청 사건과 연관돼 정치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국가정보원이 김대중 정부 시절 도청에 대해 발표한 것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음모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인권과 민주화의 상징을 자부하는 김 전 대통령 입장에서 재임 중 국정원 도청이 있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국정원의 발표에 노무현 정권의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쇠한 전직 대통령이 정치적 논란의 와중에 건강 악화까지 겪게 됐다면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도청 사건이 과거와 현재, 정권과 정권을 넘나들며 얼마나 민감하고 엄중한 사안인가를 말하는 단면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오직 진실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게 된다.
측근들이 전하는 김 전 대통령의 상심이 국정원의 발표 자체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는 도청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김 전 대통령도 재임 중 도청이 있었다면 이를 밝혀야 한다는 데 대해 달리 이의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 김 전 대통령이 그 정도로 놀랐으면 국민의 정부의 도덕성을 믿었던 국민들이 놀란 정도는 아마 그보다 더 컸으면 컸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논란이 이렇게 비약하고 꼬이는 이유 중 하나는 국정원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도청이 있었다고 하면서도, 누가 누구를 얼마나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내용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데서 문제가 증폭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이 마당에까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고 보고 싶지만, 이를 분명히 해결하는 것은 현 정부의 책임에 해당한다.
도청 사건을 정치적 활용 대상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 전모와 진상을 분명히 밝히고 책임을 철저히 가리는 것만이 국가와 권력이 국민에게 해야 할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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