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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조직인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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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조직인간’ 사회

입력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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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요구는 강력하고 끊임없다. 조직생활에 빠져 있을수록 조직의 요구에 저항하거나 그 요구를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조직에 굴복해야만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월리엄 화이트가 1956년에 출간한 ‘조직인간’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61년 유태인 학살을 저지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은 ‘조직인간’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과정을 취재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태인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나치 전범도 집에선 모범가장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건 ‘악(惡)의 평범성’이었다. 아이히만이 악마와 같은 인물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했겠지만, 아이히만이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고 하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이다.

한국의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들도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안기부 도청 요원들도 모범적 시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조직의 요구에 응했던 것 뿐이다. 독재정권 시절도 아니었는데, 그 요구를 거부할 순 없었을까?

이 질문은 연쇄 질문을 불러온다. 어느 분야에서건 수위를 달리고 있는 조직의 특성은 무엇인가? ‘1등 기업’에서 ‘1등 신문’에 이르기까지 그 조직이 다른 조직과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건 그 조직 구성원의 ‘조직인간’ 정신이 투철해 일사불란한 단결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피아’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어느 신문사주가 특정 후보 대통령 만들기를 결심했다고 해서 그 신문사의 모든 기자들이 그 일을 위해 뛰는 게 가능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차례 일어났던 일이다. 내부 저항은 없다.

모두 다 ‘조직인간’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고도 놀라운 건 독자들의 저항도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선 어떤 신문이 무슨 짓을 하건 독자가 떨어져 나가는 일은 없다. 독자들은 오직 힘만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정의감은 독특하다. 광장의 구경꾼이 될 때에 한해서 불 같은 정의감이 발동한다. 구경거리가 되지 않으면 정의감도 없다. ‘우우’ 소리가 날 정도로 사람이 몰릴 때에 한해서만 ‘진실’과 ‘정의’와 ‘개혁’을 엄청나게 사랑한다. 한국 특유의 ‘사이버 조직인간’이 탄생해 ‘사이버 패거리주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치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내부 고발자를 잔인하게 대하는 한국사회의 강고한 풍토를 이해할 길이 없어진다. 최근 한 내부 고발자는 “만약 누가 내부고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절대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습니다”라고 한(恨)을 토로했다.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엉터리라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 건 내부 고발자를 싸늘하게 대하는 한국인 다수의 ‘조직인간’ 근성이다.

●인산 자율성 상실 더욱 강요

1996년 효산콘도 비리 감사 중단 의혹을 폭로한 죄로 10년째 감사원과 법정싸움을 벌이며 패가망신의 길로 접어든 현준희씨의 경우를 보라. 현씨는 노무현 정권에 ‘절망을 느낄 뿐’이라고 개탄했는데, 소위 민주정권 사람들의 ‘조직인간’ 근성도 알아줄 만 하다. 독재파와 민주파가 똑같이 공유하는 게 하나 있다면 바로 그 점일 것이다.

광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가 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평소 ‘조직의 쓴 맛’에 대한 공포가 초래하는 인간 자율성의 상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정규직의 시대에 ‘조직인간’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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