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전 안기부(현 국정원) 미림팀장 공운영(58)씨가 정권의 필요로 ‘도청’에 동원됐다가 정권이 바뀐 뒤 강제해직 당했을 때의 울분을 변호인을 통해 털어 놓았다.
공씨의 변호인 서성건 변호사는 10일 “최근 공씨를 접견했을 때 그가 국정원을 떠나던 심경을 자세히 이야기 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에 따르면 공씨는 직권면직 돼 국정원 청사를 떠나던 순간을 날짜와 날씨까지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공씨는 “국정원을 나오던 1999년 4월 13일을 절대 잊지 못한다”며 “20년 넘게 조직을 위해 일한 서기관급 직원에게 전별금이나 환송식은커녕 싸갖고 나오는 짐 하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공씨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 (국정원 청사가 있는 서울)내곡동에서 (혼자)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 말했다.
공씨는 93년 7월 1차 미림팀이 해체된 뒤 서기관에서 사무관으로 강등됐으며, 책상도 9급 말단 직원 옆으로 옮겨진 채 아무런 업무도 주어지지 않았다. ‘사표를 쓰라’라는 압력이었지만 도청업무만 해온 사람이 밖으로 나가 무엇을 할 지도 막막했다. 그는 그때부터 자신이 언제든지 도태될 수 있다고 생각해 테이프를 보관하게 됐다.
94년 2월 2차 미림팀이 만들어져 도청활동을 재개했으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 그는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였다. 99년 공씨는 몰래 모아두었던 테이프 274개를 갖고 국정원을 떠났다.
서 변호사는 “공씨는 미림팀 재건을 지시했던 국내정보담당 국장 외에 도청을 지시한 상부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했다”며 “국정원의 생리에 따라 위에서 시키면 타당성을 따지지 않고 움직였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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