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과연 ‘판도라의 상자’안의 도청테이프 274개에 대한 내용분석을 하고 있는가. 내용분석을 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 했는가.
검찰이 옛 안기부 ‘미림’ 팀장을 지낸 공운영씨로부터 도청테이프를 압수한 지 9일로 13일이 지났지만, 이와 관련한 수사진행 상황은 일절 공개하지 않아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수사 보안상 도청테이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도청테이프 분석작업을 처음부터 하지 않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도청테이프의 진위만 확인한 뒤 테이프를 금고에 넣어 봉인해 두었다는 주장이다. 우선 주변 정황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검찰이 수사자료 활용 등에 대비해 테이프 내용을 분석하려면 음질개선, 음성대조, 편집여부 확인, 녹취록 작성 등이 필수다. 하지만 이 같은 수사지원을 전문으로 하는 대검의 증거분석팀이 서울중앙지검에 파견 나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담당자가 휴가를 미루고 대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대검 수뇌부가 예정대로 휴가를 떠나라고 했고 이후에도 찾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검찰이 도청테이프에 대해 일종의 ‘모호성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용 분석이나 수사 여부에 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답변을 피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는 단지 수사 보안 차원이라기보다 테이프 내용 수사에 대한 검찰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연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았다가 화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 특별법 또는 특검을 통한 테이프 공개해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검찰의 관망자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불법자료에 접근하는 방식은 적법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정의고 방법은 최선이다”라는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의 말은 도청테이프 수사에 대한 검찰의 입장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테이프 처리에 대한 검찰의 고민은 여전하다. 이미 내용이 공개된 삼성 도청테이프와 나머지 테이프의 형평성 시비가 그것이다. 고발장이 접수된 삼성을 수사하지 않을 수도 없고, 수사할 경우 나머지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 요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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