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8일 “정치적 의도도, 음모도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인터넷을 통해 노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접한 뒤 별다른 말은 하지않았지만 표정은 어두웠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인 최경완 씨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김 전 대통령의 기분이 좋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최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국정원 개혁과 인권을 그토록 강조했고 살아온 인생 내내 도청의 피해자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가 됐다”면서 “이렇게 융단폭격을 받아야 하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최 비서관은 특히 “(현 정권에서) 대북 송금 특검에 이어 또다시 국민의 정부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치욕과 수모를 주려 한다”며 “이를 보는 김 전 대통령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초점이 YS 정권의 도청과 삼성ㆍ중앙일보의 대선개입에서 DJ 정부의 도청 논란으로 옮겨지고 있고, 김 전 대통령을 도청의 가해자처럼 몰아가는 흐름에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현 정권이 DJ와의 의도적인 단절을 통해 정치적 지형개편이라는 잇속을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DJ정부 도청을 꺼냈다” “국정원이 모호한 발표로 마치 엄청난 도청이 있었던 것처럼 만들었다” “공소시효가 남은 전 정권 관계자들만 희생양이 된다”는 의구심 섞인 언급들이 줄을 이었다.
DJ 적통을 자처하는 민주당은 노 대통령을 음모론의 주체로 지목하며 전방위 공세에 나섰다. 한화갑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대담에서 “국정원 발표는 청와대에서 결정한 것이며 정치적 동기가 불순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대표는 “집권 3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발표한 이유는 무언가“라며 “이런 식으로 사건을 악용하면 잃어버린 5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현 정권도 도청을 한다고 믿는다”라고 칼을 겨눴다. 민주당은 안기부 X파일과 관련, 여당의 특별법 안을 지지했던 당초 입장에서 ‘특별법 불필요’와 ‘테이프 내용 비공개’ 방침으로 선회했다.
이에 열린우리당 고위관계자는 “아마 김 전 대통령 측에서도 우리의 진심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필요하면 특사라도 파견, 당의 입장을 설명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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