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불법도청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검찰의 수사 대상은 천용택 임동원 신건 등 전 국정원장들을 중심으로 주요 간부들만 20명 안팎에 이른다. 국정원 보고의 정점에 있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수사선상에서 비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윗선의 지시로 도청을 한 전ㆍ현직 국정원 직원들까지 포함하면 수사대상은 50명이 넘는다.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죄목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2002년 3월 법 개정 전 공소시효 5년, 개정 후 7년), 국정원법상 직권남용(공소시효 5년), 국정원직원법상 비밀누설(공소시효 7년), 형법상 직권남용(공소시효 5년), 형법상 직무유기(공소시효 5년), 국회 위증(공소시효 7년) 등이다.
공소시효로 볼 때 김영삼 정부 때의 불법도청은 2000년 8월 이후 도청자료 유출 행위가 확인되지 않는 한 처벌하기 어렵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대상을 공소시효 안에 있는 사람들로 한정하지 않는다”며 진상규명 차원에서라도 김영삼 정부의 불법도청 사실을 조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사법처리가 어려운 사안을 수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검찰 수사는 사법처리가 가능한 김대중 정부 시절 도청 행위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들어 초기에는 도청을 하기가 힘든 분위기였다고 한다. 도청이 재개된 것은 1999년 천용택 원장 취임을 전후 해서라는 증언이 많다.
천 전 원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미림팀의 도청 자료를 회수하도록 지시하고 처리 결과를 보고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수사의 초점이 천 전 원장에게 맞춰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검찰은 4일 천 전 원장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데 이어 조만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천 전 원장의 후임인 임동원, 신건 전 원장, 김은성, 이수일 국내담당 차장 등의 역할도 주목된다. 특히 신 전 원장은 자신의 재임 중 도청을 중단시킨 인물인 만큼 국정원의 과거 도청 전모를 상당부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도청 지시자를 밝히지 못하면 도청 실무를 담당한 하위직만 처벌될 수 있다. 2002년 국정원 불법도청 수사에서 도청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한 검찰로서는 이번 수사에서 도청의 ‘몸통’을 끝까지 밝혀내 자존심 회복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공소시효와 범죄 구성요건 등이 복잡해 사실관계가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관련자들의 사법처리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 불법도청을 지시한 ‘몸통’과 보고라인, 도청행위자, 유출자 등의 법 적용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청을 직접 지시한 경우 직권남용이 되지만 지시는 하지 않고 묵인만 했다면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국회 위증죄의 경우 불법도청 사실을 모른 상태였거나, 알았더라도 국회에서 선서를 하지 않았다면 처벌을 할 수 없다. 기관장들의 경우 국회 상임위에서 선서 없이 답변을 하는 것이 관행이어서 사법처리에 앞서 검토가 필요하다.
검찰수사에서 김대중 정부 때 이뤄진 도청내용과 대상이 밝혀질지도 관심거리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도청내용은 검찰이 확보한 274개 테이프에 들어있지만 김대중 정부의 불법도청 자료는 전부 소각했다는 것이 국정원의 발표다. 검찰은 향후 재판의 증거로 쓰기 위해서라도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해서나마 도청 내용과 대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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