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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파문/ DJ정부 실세들도 도청공포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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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파문/ DJ정부 실세들도 도청공포에 떨었다

입력
2005.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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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공작정치 근절을 표방했던 김대중 정부에서도 도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의외의 충격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당시 고위공직자는 물론 핵심 실세들조차 쉬쉬했을 뿐 전화로 속 깊은 얘기를 하지 못했을 만큼 도청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권력의 2인자조차 그랬다. 힘을 가진 자일수록 도청 공포가 컸다는 것은 어둡고 음울한 역설이었다.

DJP연대로 대선 승리를 이끌어낸 김종필 전 총리는 DJ 정부 초기에 사실상 권력을 반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도 총리 시절 내내 도청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도청방지시스템 전문업체인 H사 대표를 지낸 안 모씨의 증언이 당시 정황을 잘 말해준다.

“DJ정권 때 신분을 전혀 밝히지 않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사무실 보안조치가 필요하다며 만나자고 했다. 그 사람의 요구로 몇 번이나 약속장소를 옮기는 007 작전 끝에 결국 광화문 간이공원의 한 벤치에서 만났다. 그 사람이 이것저것 캐묻더니 보안조치가 필요한 곳이 바로 총리실이라며 어렵게 본론을 꺼냈다.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을 하고 며칠 뒤 안내자의 차량을 타고 검문없이 총리 집무실로 가서 몇 시간동안 보안점검을 했다. 삼청동 총리공관까지 점검했다. 도청장치는 없었지만 2인자마저 이래야 하다니…충격이 컸다.”

동교동계 핵심들도 민감하긴 마찬가지였다.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만 해도 비서실장 시절 자주 사용한 시내 P호텔에서 중요한 인사를 만날 때면 휴대용 도청감지장비를 갖고 다니는 관계자를 미리 보내 숨겨둔 도청장치가 없는지를 철저히 점검했다.

정보기관 수장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인 등이 자주 찾는 여의도의 한 고급음식점 주인은 도청파문이 터진 뒤 “DJ 정부 시절 정치인출신 국정원장이 저녁예약을 한 적이 있는데 국정원 직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이상한 기계로 예약한 방과 주변을 샅샅이 검색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휴대폰도 경계 대상이었다. 물론 이들은 전화통화가 불가피할 경우 유선전화 대신 휴대폰을 썼다. 이한동 전 총리만 해도 자신의 집무실에서 일반전화를 놔두고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2000년 말 한 의원이 비리혐의로 재판을 받는 동료의 선처를 부탁하러 갔었는데 이 전 총리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청와대의 모 인사에게 “선처해달라”고 전화한 게 알려져 “총리도 유선전화는 아예 안 쓴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이후 휴대폰 역시 도청이 가능하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실제 휴대폰 통화내용을 도청한 국정원 자료가 흘러나오면서 휴대폰에 대한 경계심리도 급속히 퍼졌다. 정치인들이 본인이나 가족 명의가 아닌 대학 다니는 딸의 친구, 파출부 여동생 등 전혀 엉뚱한 제3자 명의의 휴대폰을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임기 말인 2002년 12월에는 청와대에서 비화기 휴대폰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박지원 비서실장과 신건 국정원장이 언쟁을 벌이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 원장은 박 실장이 안주섭 경호실장 제의로 20명 안팎의 핵심 인사들에게 비화기 휴대폰을 쓰도록 하는 방안을 극비리에 추진중인 것을 알고 “정부에서 비화기 휴대폰을 쓰면 휴대폰에 대한 국정원 도청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며 제지해 백지화시켰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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