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로 시작된 도청파문이 YS정권에 이어 DJ정권으로 불똥이 튀면서 사건의 초점도 급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X파일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만 해도 이목은 1997년 대선 당시 대선 후보들을 향해 벌인 삼성과 홍석현 중앙일보 대표이사의 검은 뒷거래에 집중됐다. 그러나 곧 이어 YS정권 당시 문제의 X파일을 만든 안기부내 ‘미림팀’과 그들이 남긴 도청기록이 도마에 올랐다. 급기야 국가정보원이 DJ정권에도 불법도청을 저질렀다고 고백한 5일 이후에는 도청책임론과 전격공개배경 등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국정원이 타의가 아닌 자의로 과거 자신들의 불법 도청 허물을 공개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DJ정부 시절의 도청 사실 공개를 지시한 의도와 배경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원 자체 조사를 통해 YS 정부 뿐 아니라 DJ 정부 때의 도청 행위가 밝혀졌다는 사실을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보고 받고 “파장이 염려되기는 하지만 모든 진실이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개 배경에 대해 청와대와 국정원은 “국정원이 진실을 밝히지 않고 어떻게 새 출발할 수 있겠느냐”며 순수한 의도를 내세운다. 하지만 민주당 등에선 “노 대통령이 국면 전환과 정치권 새판 짜기를 위해 DJ정부 시절의 도청 의혹을 꺼낸 것 아니냐”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민주당 일부에서 정치적 의도를 거론하지만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국정원 관계자도 “감청 능력이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이번에 진실을 밝히지 않고는 국정원이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여권이 ‘DJ와 민주당 죽이기’를 본격화하고 정치권 판갈이를 통해 노 대통령의 대연정(大聯政) 제안에 동력을 제공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도청 문제를 던져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 같다”며 “노 대통령이 도청 문제를 정치판을 바꾸는 데 활용할 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의도가 어떻든 도청 논란은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여권이 4월 재보선 후의 수세 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계기로 활용할 개연성이 있다. 또 2003년 노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뒤 민주당이 내분 상태에 빠져든 것처럼 도청 파문이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변화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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