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아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것이다.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엔 토끼 사육장과 염소 사육장이 있었다. 방학 동안에도 누군가 매일 학교에 나와서 토끼와 염소에게 풀을 뜯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방학할 때 미리 토끼당번 날을 정해 놓는다. 여자 한 사람 남자 한 사람이다. 내 짝이 누구일까도 궁금하고, 또 이 날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토끼에게 주는 풀은 여자도 뜯을 수 있지만 염소는 손으로 뜯은 아카시아 잎만 가지고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남자 당번이 염소를 끌고 나가 풀밭에 매어 놓는다.
방학을 해 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꽃밭은 붉은 칸나와 분홍색 글라디올러스와 샐비어가 새빨갛게 피어나 있다. 꽃밭 한 켠 해바라기 그늘 아래에서 그 동안 보지 못해 서로 궁금한 것을 묻는다. “니는 숙제 다 했나?” “바다는 갔다 왔나?” “아프지 않았나?”
오후에 저녁먹이를 미리 주고 일찍 헤어져도 되지만 왠지 그게 아쉬워 오래도록 함께 토끼장 앞을 지키고 빈 꽃밭을 지키다가 노을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도 내 초등학교 동창들은 모임 때마다 그 시절 토끼 당번날 얘기를 한다. 그날 내 짝이 누구였다고.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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