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의 대모(代母)로 일컬어져 온 조경희(趙敬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이 5일 새벽 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1918년 인천 강화읍 온수리의 독실한 성공회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전 문과에 다니던 38년 잡지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이 당선돼 등단했다. 이듬해 조선일보에 입사, 서울 중앙 부산일보 등을 거쳐 62년부터 한국일보에 재직했으며 80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40여 년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여성권익 향상에 앞장섰고, 한국 문화예술의 터를 닦는 데 혼신을 다한 여장부였다. 71년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해 지금껏 이끌어왔으며,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회장 등을 거쳐 84년에는 여성 문화인으로는 처음으로 예총 회장을 맡았다. 예총 회장 재임 중 지금의 예총회관을 마련했고, 88년 노태우 정권 시절 정무제2장관을 맡아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건립 예산 500억원을 끌어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장관 시절에는 13개 시도 가정복지과장을 일제히 국장으로 승진발령하는 등 여성 권익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는 뛰어난 언론인이자 수필가였다. 기자생활 대부분을 학예ㆍ문화 분야에서 일하면서 문재(文才)를 드날렸고, 당대의 문인이며 예술계 인사 등과 폭넓게 교유하며 오늘까지 이어진 한국 문화예술 창달의 길을 지켰고, 지켜봤다. “월탄 박종화 선생님의 호령호령 하는 큰 목소리, 시인 정지용 선생이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목청을 높여 시를 낭송하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또 명동에 나가면 김억 계용묵 정비석 선생 등 유명 작가 시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자서전 ‘언제나 새길을 밝고 힘차게’, 2004, 정우)
고인은 근년까지도 예술의전당 이사장, 한국여성개발원 이사장 등을 맡아 왕성히 활동해왔으며 97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도 일해왔다. 저서로는 수필집 ‘우화’(55) ‘골목은 아침에 나보다 늦게 깬다’(82) 등 9권과 자서전이 있으며, 한국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상과 은관문화훈장 등 다수의 상과 훈장을 받았다. 지난 달 7일에는 올해의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족은 아들 홍춘희(개인 사업)씨와 딸 성미(在美) 손자 기두(해군 대위) 기돈(대한항공 근무)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1호. 발인은 9일 오전7시, 영결미사는 오전10시 서울 광화문 대한성공회 대성당에서 갖는다. 장지는 충남 천안시 광덕면 선영. (02)929-6699
최윤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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