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규 국정원장은 5일 YS정부는 물론 DJ정부 때도 계속됐던 불법도청이 종료된 때를 2002년 3월이라고 발표했다. 어떤 사정이 있었길래 DJ의 퇴임을 정확히 1년 앞둔 그 시점에 도청이 전격 중단됐을까.
2002년 3월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때였다. 집권당이던 민주당만 해도 3월9일 제주를 시작으로 경선이 시작됐지만 이인제 후보가 박지원 청와대 정책특보 등을 겨냥해 음모론을 제기하는 등 몸살을 앓았다. 한나라당 역시 그 해 2월28일 박근혜 의원이 이회창 총재 체제에 반발해 탈당한 직후로 신당설이 끊이지않던 상황이었다.
정치정보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손쉬운 방편인 도청을 포기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신건 원장의 도청 중단을 일단 평가받을만 하지만 정치적 상황이 그런 결단을 내리게 했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국정원이 대선 이후를 우려해 도청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가 국정원에 “만약 도청이 이루어진다면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와 관련, 당시 국정원의 한 고위간부는 “대선을 1년 남겨둔 탓인지 정보위만 열리면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법 도청의혹을 집중 추궁하는 등 공세가 심상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국정원내 일부 인사들에게까지 미친 한나라당의 정보력에다 불법도청이 발각됐을 경우 파장을 우려했다는 설명이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김승규 국정원장도 이날 “통신비밀보호법이 강화돼 2002년3월부터 모든 감청장비를 국회 정보위에 통보하게 돼 관련 장비를 모두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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