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안기부 특수도청조직 미림팀의 불법도청 실태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자체조사는 최대의 관심사인 도청지시 배후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5일 발표한 조사결과는 그 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국정원이 밝힌 최고 ‘윗선’은 오정소 전 안기부 1차장 선에 머물렀다. 오씨가 1994년 2월 안기부 대공정책실장(1급)으로 부임한 뒤 “과거 방식으로는 가치가 있는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첩보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미림팀 재편을 지시했다는 것.
이는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의 자술서를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나 오씨의 윗선이 미림팀의 존재나 불법도청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책임자인 국장이 입을 열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해 우리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오씨가 미림팀 도청내용을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김현철 라인’으로 전달했다는 의혹도 풀지 못했다. 미림팀 전 직원 10명과 지휘라인 10여명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했지만 보고가 어느 경로로, 누구에게까지 됐는지 확인하지 못했으며, 민간인인 이씨와 김씨에 대해서는 강제 수사권이 없어 조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발표 현장에서 “미림팀 자체가 직제상 명기된 조직이 아니었다”면서 “그런 활동은 이전에도 실무상의 활동 방법 중 하나였으며 지휘부에 보고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애초부터 조사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에 대한 조사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99년 도청테이프의 회수를 지시한 천씨는 당시 미림팀장 공씨를 사법처리하지 않아 공씨와의 뒷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국정원은 그러나 천씨에 대해서는 전화로 두 차례 간단한 해명만 들은 뒤 서둘러 조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천씨의 진술 중 의심이 가는 대목이 적지 않지만, 이에 대한 확인조사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국정원은 조사가 미진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전직 직원에 대해서는 강제 수사권이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항변했다. 결국 전대미문의 국가기관 불법도청 사건의 배후는 이제 검찰이 밝힐 수밖에 없게 됐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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