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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숙년(熟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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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숙년(熟年) 노동

입력
2005.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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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가을 도쿄(東京)에서 ‘세계경영자회의’가 열렸다. 회의에 모여든 세계 유수 기업 경영자들의 이목은 두 거물 경영자에게 집중됐다. 먼저 등단한 잭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GE) 당시 회장은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은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일본 기업의 경영체질이 원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스스로 단행한 GE의 대규모 사업 개편과 인원 삭감을 설명한 후 “사람과 사업을 자르지 못하는 경영자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범죄적”이라고 단언했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자동차 당시 회장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기업이 해야 할 투자를 억제하고, 재건 노력 대신 사업 매각을 택하는 것은 본말전도”라며 “일본 기업의 경쟁력의 원천은 인간 존중의 경영”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두 사람의 설전에 승패 판정이 내려지진 않았지만 분위기로는 오쿠다 회장이 약간 열세인 듯했다.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로 과대 포장된 ‘미국 기준’이 밀려들던 때였다. 회의장의 공기도 묵직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눌려 있었다.

■그러나 도요타는 잭 웰치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종신고용제를 포기하기는커녕 정년(60세) 이후의 재고용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영실적은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 내년부터는 현재 63세인 재고용 연한을 65세로 늘리고, 대상자 범위도 더욱 넓히기로 했다. 도요타만이 아니다. 정년 이후의 재고용으로 정년을 실질 연장하는 것은 일본 기업을 관통하는 흐름이 되고 있다. 60세가 넘은 종업원은 어느 기업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인간적 원숙과 기술적 완성을 뜻하는 ‘숙년(熟年) 노동자’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1990년대 60세이던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이 지난해 62세로 높아졌고, 2013년 65세로 늦춰지는 데 따른 사회적 요구의 결과이다. 그러나 사회적 요구가 있다고 해서 꼭 그리 되는 것은 아니다. ‘40ㆍ50대가 직장 다니면 국가적 경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인 한국 상황을 보면 확연하다. 국가도 하기 힘든 일이다.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니혼덴산(日本電産) 사장이 밝히듯 “기업의 최대 공헌은 고용”이라는 자각이 기업에 있느냐 여부에서 나온 차이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숙년’ 노동자들을 보게 될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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