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뜨거운 감자가 된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 파문이 테이프 공개여부를 놓고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X파일 수사 주체를 놓고 ‘검찰 vs 특검’으로 맞섰던 여야가 이번에는 압수한 도청테이프 274개의 내용 공개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열린우리당은 1일 ‘제3의 기구’를 설치해 공개 기준 등을 정하자고 치고 나온 반면 야3당은 여당의 정치적 의도를 불신하며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열린우리당은 불법도청테이프의 공개 여부와 기준, 처리방향 등을 결정할 가칭 ‘진실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테이프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이 많은 만큼 적정한 기준 하에서의 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한나라당에 비해 ‘과거 정치’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여당이 여론을 앞세워 극히 개인적인 부분을 빼고는 도청테이프를 대부분 공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우리당은 이날 진실위를 ‘제3의 기구’라고 못박았다. 테이프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가 검찰은 물론 국회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당 관계자는 “도청테이프에 현 정치권과 검찰이 연루된 내용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국민 감정상 국회나 검찰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당이 제3의 민간기구를 내세운 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검찰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견제심리다. 검찰이 테이프 정보를 독식할 경우 미칠 여권 내 역관계 변화 등을 의식한 것이다. 한 당직자는 “검찰에게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당내에 적지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검을 주장하는 야당 공세에 대한 대응 카드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한시적인 특별법을 제정해 진실위를 구성함으로써 한나라당 압박은 물론 검찰도 견제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권 반응은 차가웠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공개 자체를 반대했다. 여권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란 걱정이 크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은 전부 공개돼도 부담은 없다”면서도 “공개는 불법이 되니 공개하자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도 “불법 도청한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면공개를 주장해온 민주노동당은 전혀 다른 이유로 반대했다.
여당의 제3의 기구 제안은 전면 공개요구를 피하고 한나라당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는 생각에서 나왔다는 의심이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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