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1일 유력지 아사히(朝日)신문의 취재를 공식 거부키로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에서 집권당이 언론의 취재를 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자민당은 취재원의 허락 없이 몰래 녹음한 자료로 기사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취재 거부 이유로 내세우고 있어, 일본에서도 ‘적법한 취재 방식이냐, 진실이 우선이냐’는 언론 윤리 논란이 불붙었다.
이번 사건은 NHK 일본군 위안부 특집방송에 대한 외압문제와 관련, 자민당이 아사히측에게 역공을 취한 모양새가 됐다. 다케베 쓰토무(武部勤) 자민당 간사장은 이날 “당 간부는 당분간 공식 기자회견 이외의 아사히 신문의 취재에 응하는 것을 자제하기로 간부회의에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자민당 내에 설치된 ‘아사히 신문 문제 대책팀’은 이날 아사히 신문측에 취재 자제를 요구하는 통지서를 발송했다고 발표했다.
아사히 신문은 올해 1월 아베 신조(安倍晉三) 자민당 간사장 대리와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경제산업성 장관이 4년 전 NHK 간부들을 국회로 불러들여 부당한 압력을 가한 결과 NHK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특집 프로그램의 내용이 수정됐다고 보도했다. 자민당과 NHK측은 “사실무근”이라고 강력히 반발했지만, 아사히는 끈질기게 추적하면서‘진실게임’을 펼치고 있다.
취재 거부 결정은 엉뚱하게도 한 월간지의 보도 때문에 돌출했다. 고단샤(講談社)가 발행하는 ‘월간 겐다이(現代)’는 최신호에서 외압사건의 전말을 보도했는데, 여러 가지 정황상 기사 작성에 아사히 신문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떠돌고 있다. 기사에 담긴 NHK 방송총국장의 생생한 증언이 아사히 신문 취재진의 녹음 테이프 혹은 녹취록를 바탕으로 작성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사히 신문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기사 자료 외부 유출 가능성이 있어 조사중”이라며 잘못이 있다면 가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자민당은 “불법적인 녹음 테이프 등의 존재를 교묘히 흘리면서 우리를 협박하는 것”이라며 아사히측을 비난했다.
취재원과의 대화를 몰래 녹취하는 것은 언론 윤리상 금기다. 최근 미국에서도 저명한 칼럼니스트가 같은 이유로 해고됐다. 아사히 신문도 ‘취재 내용의 녹음은 상대방의 양해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윤리규정이 있다. 일각에선 아사히 신문이 NHK에 대한 정치인의 압력을 증명하는 녹음 테이프 등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으면서도 공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만일 우여곡절 끝에 테이프 공개로 외압사건의 진상이 드러날 경우 일본 사회가 이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지에 대해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진다. 일본 언론들은 자민당의 취재거부 조치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강압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사히 신문도 “계속해서 취재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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