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련인가, 노노련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한나라당의 자살골인 탄핵 덕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반공 세력이 아닌 자유주의 세력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17대 국회에서 노무현 정부가 어떻게 나갈 것인가와 관련해 이 칼럼(2004년 4월 27일자)을 통해 제기한 화두였다. 즉 노무현 정부가 탄핵 전까지 이라크 파병, 집시법 개악,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정책 등 핵심 정책에서 보여줬던 한나라당과의 사실상의 정책연합(한노련)을 계속 추진해 나가느냐, 아니면 탄핵에다가 다수 의석도 차지했으니 민주노동당과 연대해 개혁을 추구하는 노노련으로 나가느냐는 선택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었다. 이후 17대 국회로부터 노 대통령의 연정 제의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정부는 노노련과 한노련을 왔다 갔다 하는 갈지자형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해 정기국회의 경우 노무현 정부는 국가보안법폐지 등 4대 개혁법안이라는 민주 개혁을 놓고 민주노동당과 연대해 한나라당과 대치하는 노노련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해찬 국무총리의 불필요한 한나라당 자극 발언으로 한나라당의 강경파가 힘을 얻고 국회가 공전되어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 어려워지자 노 대통령이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하겠느냐며 사실상 항복선언을 함으로써 노노련은 끝이 났다.
이어 노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올인을 하고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며 한노련으로 나아갔다. 민주 개혁은 사실상 포기한 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비정규직 확대 등 소위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화해 나가는 데 한나라당과 공조하며 이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과 대치한 것이다.
그러나 4ㆍ30 재보궐 선거, 특히 선거에서의 참패는 한나라당의 정치 공세 강화로 귀결됐다. 한노련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그 극적인 예가 국방장관 해임안이었다. 그리고 국방장관 해임과 조기 레임덕화라는 위기에서 노 대통령을 구출한 것은 해임안에 반대투표를 하고 나선 민주노동당이었다. 노노련이 복원된 것이다. 그리고 해임안에 분노한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정의 발목을 잡는 한나라당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연정을 제의하고 나섰다. 물론 한나라당을 포함한 대연정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제의는 기본적으로 민주노동당과의 연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국방장관 해임을 막아준 민주노동당과의 노노련을 공식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착각에 불과했다. 노 대통령의 본심이 처음 연정을 제의했을 때 털어놓은 여소야대에 따른 개혁과 국정 추진의 어려움이 아니라 지역주의 극복, 그리고 이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개혁과 국정 추진을 위해서는 민주노동당과 연대해 절반 의석을 넘는 노노련이라는 개혁_진보연합을 구성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지역주의 극복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노노련은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할 경우 한나라당에 총리 및 내각 임명권을 양도하여 동거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한노련을 공식으로 제의하고 나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아니더라도 노무현 정부가 현 상황에서 노노련보다는 한노련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노무현 정부가 민주노동당이 원하는 민주개혁은 사실상 포기한 반면 민주노동당이 결사 반대하지만 한나라당은 찬성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은 적극 추진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노선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여론이 노 대통령의 제안에 비판적이고 한나라당조차도 대통령의 구애에 냉담하다는 것이다.
노노련은 물 건너 갔고, 한노련이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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