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옛 국가안전기획부 불법 도청테이프 274개의 공개 해법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검찰에 압수된 이 테이프는 통신비밀보호법에 묶여 전면 공개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진실 규명과 국민의 알권리 보호 차원에서 적정한 기준을 정해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독립적인 제3의 기구가 공개여부와 기준을 결정토록 하자는 대안까지 제시한 상태다.
현재 검찰 안팎에서 거론되는 도청테이프 공개해법은 크게 4가지다. 먼저 테이프 내용을 전부 공개하자는 주장이다. 재벌-정치권-언론의 유착관계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져 버린 마당에 그대로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용이 영원히 비밀로 지켜질 수 있겠느냐는 현실론도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테이프 내용이 적나라하게 공개될 경우 사회에 엄청난 대혼란이 예상된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시비는 물론, 관련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 등 법적인 문제도 따른다.
범죄행위나 공익에 관련된 내용에 국한해 공개하자는 주장도 일부 시민단체와 법학자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테이프 내용을 공개해서 얻는 공익이 침해 받는 사익보다 더 크다면 공개하는 것이 맞다는 법 원칙을 근거로 든다.
검찰로선 테이프 내용을 선별적으로 수사한다는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확정되지 않은 범죄혐의를 공개함으로써 피의사실 공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검찰이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씨를 기소하는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도청 대상자와 장소 등 일부 내용을 공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형사소송법은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일시, 장소와 방법을 명시해서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현재 공씨의 공소장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시킬지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에 제출할 증거물 목록에 도청테이프의 목록을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어 공개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검찰이 구체적 대화 내용은 빼놓고 도청 내용을 유형별로 요약해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경우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컨대 정치인 재벌 언론인 고위공무원 등 도청대상자 통계를 제시하거나, 정치자금 뇌물 인사청탁 등 주제별로 묶어서 공개하는 것이다. 도청실태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여론의 공개요구 수준에는 못 미친다.
이 때문에 검찰이 위법 시비에서 벗어나 도청 테이프를 공개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임지봉 건국대 법대 교수는 “사생활 보호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두 가치가 충돌했을 때 헌법적으로 알권리가 우선한다는 외국의 판례가 많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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