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어려운데 말도 안 되는 도청 사건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선거 때마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강제보험을 들어야 한다면 강제한 쪽이 문제인가 보험을 든 쪽이 문제인가? 우리의 정치 수준에 걸맞은 우문이다. 문득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1992년 대선 당시 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는지를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조금은 알 것 같다.
‘정치ㆍ경제ㆍ기술혁명의 3대 혁명에 성공하지 못하는 나라는 21세기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 시사 주간 ‘비즈니스 위크’가 ‘21세기의 자본주의’라는 제목으로 94년에 발간한 특별호의 결론이다. 10년이 지난 후 국제 정세는 그 결론이 옳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혁명은 독재와 독선의 아류 민주를 벗어나 참된 민주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경제 혁명은 계획ㆍ관치경제를 넘어 민간 자율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PC의 급격한 확산으로 시작된 기술혁명은 지식ㆍ첨단 산업사회의 근간인 첨단기술과 정보ㆍ통신기술의 자급자족을 의미한다.
-정치혁명, 내용은 미완성
경제혁명이 없이는 기술혁명이 어렵다. 민간 자율 시장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공정한 경쟁이 없는 한 첨단기술 및 정보ㆍ통신 기술의 개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혁명이 없으면 경제혁명도 없다. 민주로 포장된 독선과 아집은 통제와 규제의 단맛을 뿌리치지 못해 시장을 민간 자율에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혁명이 없이는 경제혁명도 없고 기술혁명도 없어 그 나라는 21세기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십 수 년 전 어렵게 군사독재를 종식시키는 정치혁명을 이루었다. 그러나 내용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문민_국민_참여정부로 이어지면서 날치기, 국회의원 빼가기와 빌려주기, 친인척과 측근들의 권력형 부정부패, 지역감정의 악용, 능력과 전문성에 관계없는 낙하산 인사 등 군사독재의 망국적 과오는 그대로 답습되거나 오히려 보태져 왔다.
이는 주로 민간 대통령들이 국제 정세를 아우르는 국가 백년대계의 비전을 제대로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 정세에 어두우니 국내 문제에 집착하게 된다. 내 편을 많이 만들어야 하니 평등주의를 선호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평등주의는 다름 아닌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의 진짜 얼굴은 자신만이 옳다는 착각과 그것으로부터 연유되는 독선과 아집이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되고 국론이 분열되어 국정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근자에 노무현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이 도를 넘고 있다. 지역주의 극복을 명분으로 제안한 연정은 국정을 표류케 한 그 동안의 숫한 실언 중에서 으뜸이다.
실현 가능성에 관계없이 국론을 분열시켜 어려운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 뻔한 사단을 왜 벌리는지 모를 일이다.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소모적 논쟁과 정쟁이 걱정스럽다. 대통령에 대한 얼마 남지 않은 신뢰가 떨어져 국정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것도 두렵다.
-국론분열 발언 이제 그만
시간이 많지 않다. 더 이상 일을 벌리기보다는 그 동안의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참된 민주정치를 실천에 옮겨 정치혁명의 단초를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멀리하고 편지 쓰기를 자제하면서 무엇보다도 민주냐 반민주냐, 친일이냐 반일이냐,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식의 2분법적 갈등구조를 더 이상 부추기거나 생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참된 민주정치란 시스템에 의한 타협과 설득으로 국민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합목적적으로 통합ㆍ조정하여 이를 국가 발전에 연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영기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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