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도청대란이다. 검찰이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 집에서 압수한 녹음테이프 274점과 13권 분량의 녹취 보고서 내용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된다.
공씨가 털어놓았듯 대통령만 빼고 다 도청했다면 ‘X파일’에는 김영삼 정부 시절 정계와 재계, 관계, 언론계를 포함한 우리사회 지도층의 은밀하고 부끄러운 대화 내용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할 대혼란을 야기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이건모 전 안기부 감찰실장의 말에서도 도청 테이프의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다.
검찰은 사건 수사의 초점을 불법도청행위에 맞추고 있지만 국민의 관심사는 온갖 불법행위와 검은 거래가 담겨 있을 내용에 쏠리고 있다. 헌법정신과 통신비밀보호법상 도청테이프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검찰의 입장은 옳다. 물밑에서 은밀하게 오갔던 대화가 세상에 낱낱이 공개될 때 초래될 심각한 사생활 침해와 사회 혼란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공개된 삼성_중앙일보_정치권의 거래처럼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심각한 범죄행위가 도청테이프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면 이를 묻어버리는 것이 능사냐는 국민 대다수의 문제 제기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또 검찰의 도청 테이프 분석 과정에서 ‘봐서는 안될 내용’들이 상당수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고, 향후 재판과정 등을 통해 이런 내용이 어떤 형태로든지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한나라당 등에서는 권력이 야당 관련 인사들에게만 불리한 내용을 선별적으로 흘리는 등 정치적 악용소지도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테이프가 실정법 위반의 결과라는 법적 형식논리 뿐 아니라, 다수 국민의 생각과 법 감정에 부응하는 법 해석 방안을 폭 넓게 모색했으면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논란을 헌법 정신과 사회정의에 대한 성숙한 토론으로 이끄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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