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 아이슬리 지음 김현구 옮김강 발행ㆍ1만원
‘나는 4분의 3이 물’이라고 단언하는 한 인간이 어느날 록키 산맥에서 발원하는 플래트강에 누워 유유히 떠내려간다. 그리고 물의 또 다른 고안물인 개구리가 뱉어내는 울음을 들으며 독백한다. ‘나는 물이었고 그 물속에서 잉태되어 형태를 갖게 된, 신비한 연금술의 결과물이었으며, 또한 미끌미끌한 진흙 덩어리였다.’
그리고 이 사내는 얼어붙은 강에서 잡아온 메기가 봄날 수조에서 힘껏 뛰어 올라, 지하실 바닥에 죽어있는 장면에서 백만 년의 세월을 읽는다. ‘이 도약 속에는 백만 년의 태고적 세월이 응축되었으리라. (중략) 물을 마시러 온 매머드의 굵은 다리통들 사이로 꼬불꼬불 헤엄치던 그 백만 년의 세월 말이다.’
‘광대한 여행’(원제 The Immense Journey)은 우주가 꽁꽁 숨겨둔, 생의 비의(秘儀)에 육박하려 했던 미국의 인류학자 로렌 아이슬리의 도저한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1957년 출간됐지만 여전히 ‘과학 에세이의 전범’이란 수식어가 빛을 발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생명은 어디서 왔는가, 또 인간은 어떻게 진화했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우리 자신에게 가장 본질적 화두를 붙든다. 그리고 이 엄중한 질문에 맞서,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시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아주 작은 생명의 몸짓에서조차 여법(如法)한 가설을 산출해낸다.
그는 3억5,000만년 전 데본기의 말라가던 연못과 그곳에서 삐죽코를 내밀고 공기를 들이마시던, 민물 총기어(Crossopterygian)로부터 인류의 시작을 더듬어 간다. 물의 실패자로, 산소부족에 시달리던 이 삐죽코 물고기가 뒤뚱거리며 뭍으로 올라왔을 때 변화가 시작됐다. 삐죽코 물고기의 두뇌 끝에 얇은 막으로 이뤄진, 작은 풍선모양의 기포 두 개가 생긴 것이다. 인간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고 사고를 가능케 해주는 대뇌 반구의 원형이었다.
1억년 전 백악기에는 꽃이 이 세상 위에 폭발하듯 나타났다. 그제까지 물속을 헤엄치는 미세한 정충들에 의해 번식했던 식물들이 ‘꽃가루’라는 생물학적 발명에 성공한 것이다. 빙하기 시작으로 냉혈 동물인 공룡들이 멸종되고 조류와 포유류 등의 온혈동물의 시대가 열리면 개화식물은 높은 산소와 에너지 소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생존 기반이 됐다. 초식 동물들은 속씨 식물의 농축된 에너지를 섭취했고, 다시 다이어울프나 검치호랑이 같은 육식 동물들은 이들을 잡아 먹었다.
이어 마침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됐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발굽도, 동물을 잡아 찢는 검치(劍齒)도 없는, ‘눈빛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부랑자 같았던’ 원숭이 무리 하나가 나무에서 내려와 풀밭을 어기적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로렌 아이슬리의 이 같은 ‘진화론’은, 자연 속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사이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항구적으로 존재하고, 이중 상대적 우위를 지닌 인간이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찰스 다윈의 견해를 배반한다. 대신 ‘좀더 하등하고 일반화된 동물로부터 지배적인 생명 형태가 출현한다’는 고생물학자 에드워드 코프의 주장을 채택한다. 19세기 ‘미개인’이라는 단어를 발명하면서 식민 약탈의 정당성을 확보해 줬던 이론에서의 탈출이다. 생존투쟁 대신 그는 상징적 의사소통을 통한 사회적 두뇌의 창출이 진화를 낳은 ‘꿈꾸는 동물’ 인간을 정의한다.
나아가 저 머나먼 모든 시간의 여정을 우리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인간의 독선도 꼬집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점이자 종말로 보며, 실제로 우리의 사멸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와 더불어 햇빛도 사라지고 지구도 어두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새로운 진화와 생명의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는 자연 속에서 이 같은 아집을 떨쳐 버린 그는 말한다.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우리 육체 안에는 머나먼 과거 존재들의 조악함이 남아있고, 누대에 걸쳐 무수한 생물체가 구름처럼 불규칙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세계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러기에 ‘광대한 여행’은 단순한 과학 개설서와 차원을 달리한다. 수많은 생명체들 중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우주의 미미한 일개 개체에 대한 인간으로 살아간 다는 것에 대한 각성을 전한다. 과학 보다는 한결 종교적이고 문학적인 주문(呪文)으로 읽히는 이 책을 곰곰이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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