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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풍기에서 밥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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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풍기에서 밥을 먹다

입력
200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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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풍기’라고 쓴 표지판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어릴 때 겸상을 하던 손자가 밥을 흘리면 할아버지께서 “이런, 풍기에 가서 밥 먹는 법을 새로 배워와야겠구나” 하셨다.

왜정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만주와 간도로 새 터전을 찾아 떠날 때 압록강 건너 만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밥집이 하나 있었다. 만주는 예부터 기장과 조 농사를 많이 짓던 곳이고, 쌀이 귀한 곳이기도 해서 그 밥집에서는 찰기 하나 없이 퍼석한 메조로 지은 밥을 팔았다.

그런데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 주고, 조밥 한 그릇을 한 톨도 흘리지 않고 다 먹으면 밥값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젓가락으로 조밥을 꼭꼭 눌러 떠먹으면서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우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인도 신기해 하며 어디서 오는 길손이냐 물었다. 그 사람이 입에 밥을 문 채 무심히 ‘풍기’라고 말하는 순간 입안의 밥알이 튀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일부러 풍기에 들러서 밥을 먹었다.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을 때마다 풍기, 풍기 하면서.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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