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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이신조作 '새로운 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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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이신조作 '새로운 천사 '

입력
200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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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조 지음 현대문학 9,000원

냉소와 허무가 갈급의 그늘이라면, 피로는 끝내 응답 없을 갈급의 흔적이다. 그 경우 냉소와 허무는 피로의 형식이자 견딤의 수단일 것이다. 그러니 “오랜 시간 응축된 어떤 피로와 갈급”(12쪽)에 기인하는 고통의 처방은, 말할 것도 없이 말처럼 쉽고 또 단순하다.

하지만 말처럼, 그리고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처럼, 단순하지 않은 세상은 완고한 침묵으로 일관할 뿐 그 갈급에 쉽사리 눈길 주는 법이 없다. 설령 응답이 있더라도 ‘착각과 오해, 자만과 방종’에 의한 것이기 쉽다. 어긋난 이해는 고통과 냉소를 더욱 굳힐 뿐이다.

이신조씨의 작품집 ‘새로운 천사’(현대문학 발행)의 인물들이 지닌 냉소들은 대체로 그런 사연들을 지니고 있다. ‘희망’은 공허한 진통제이고 ‘행복’ 역시 부질없는 당위일 뿐이라고 말하는 ‘나’(‘중매의 즐거움’), 영화 속 주인공의 “악마처럼 야비하고 집요하며 짐승처럼 거칠고 본능적인 파이터의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그녀’(‘길의 레슨’)….

그들은 강한 듯하나 실은 여리고 약하다. 표제작 ‘새로운 천사’는 음악가와 변호사 부모 사이에서 난 10대 소녀인 ‘나’의 하루 이야기다. 이혼을 했다지만 ‘나’의 부모는 외견상 썩 모범적인 이들이다.

그들은 딸과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늘 질이 양을 상쇄하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 근원적 결핍감에 외롭다. 아니,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외형적 풍요와 거기서 비롯되는 타인의 오해가 더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아버지가 읽던 벤야민의 책을 훔쳐 읽을 만큼 조숙한 ‘나’는, 살만해서 사는 게 아니라 “자살할 값어치가 없어 산”다던 벤야민이 나치에 쫓겨 알프스의 험준한 산맥을 넘다가 오갈 데 없어 끝내 자살했던, 그 슬픔에 공감하고, 남의 이해는커녕 “오해를 도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도전적 성격’을 은근히 동경한다.

초경(初經)의 그날, ‘나’는 그 불안하고 뿌듯한 경험을 부모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한 채 텅 빈 엄마의 집 21층 베란다 바깥으로 자신의 고독한 메신저(휴대폰)를 놓아버린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전화벨 소리가 나는 공중을 향해 팔을 뻗는다. 막무가내로 떠밀리듯, 그러나 사뿐히 발을 내딛는다. 발밑으로 거센 바람이 솟구쳐 불어온다.”(135쪽)

“우리는 오해 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리하여 가끔 이해 받는 것으로 살아남는다. 죽음을 유예한다.”(‘미혹’31쪽) 이 냉소적 존재들의 유력한 삶의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탈피와 재생에의 제의적 희구(‘시간의 정원’ ‘그 여름 요양소에서 마녀와 나는’)이거나, 어떤 대상에 대한 논리 이전의 무조건적이고 기꺼운 ‘홀림’이다. 또 그 홀림의 가치는 “무엇에 사로잡혔는가가 아니라 사로잡히는 순간 자신에게 속았나 속지않았나 하는 것에서 판가름 난다”(38쪽)는 신조다.

어느 설산의 표범처럼 모든 것을 걸어 외로운 게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해 외로운 이 ‘새로운 천사’들이 “너무 오래 참았던 울음처럼” 토해내는 신음들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외롭고 괴팍함으로써 존엄을 지키려는 노인’의 이미지를 닮은 각진 구형 중고 그랜저를 몰고 “아무 곳에도 도착하고 싶지 않아” 달리는, ‘길의 레슨’의 ‘그녀’의 애절한 호소가 이명처럼 귓전을 맴돈다. “누군가,……머리를 안아줬으면 좋겠어.”(178쪽)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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