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란 조일문(26ㆍ일리노이 시카고 대학 커뮤니케이션과 3학년 휴학중)씨는 한국에서 생활한 지 4년째로 접어 드는 청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한국은 그를 거듭나게 하고 있다.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이었던 2001년 6월로 거슬러 올라 간다. 아버지 권유로 전라도 여수에서 임진각까지 걸어가는 21박 22일의 국토 대장정 행사에 참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지금껏 자신을 한국에 머무르게 한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애초 그 일을 권유한 아버지 광동(59ㆍ시카고 교민방송 ‘한미TV’ 부사장)씨에게 감사하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늘 “I’ m Korean”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막상 한국에 와 보니 아는 것이라곤 김치와 5살 수준의 한국말이 전부라는 사실은 어색하기만 했다. 국토대장정 일정을 마치고 막상 돌아가려니, 그 때부턴 왠지 아쉽기만 하더란다. 한국을 제대로 느껴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한국요?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 재미있는 지옥.미국요? 재미없는 천국이죠. 동포들이 가장 큰 고민은 정체성입니다.그들을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봐 주세요.음악이 좋아 한국에 남은 나. 그룹 멤버로 꼭 성공하고 싶어요"
결국 6개월 더 지내기로 결심하고 당시 머무르던 사촌집 근처의 영어 학원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모나 한국에 살고 있는 사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영어 가르치기는 대학 때부터 해 왔던 터라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일단 주변인들의 소개로 개인 과외부터 시작했고 학원 출강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럭저럭 생활비와 용돈은 떨어졌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외쳐댔고 술은 하루가 다르게 늘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무뚝뚝한 사람들. 그러나 알아갈수록 ‘정’을 주는 그런 문화였다.
“정말 한국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어요. 사람들과 부대끼며 알고 그로 인해 내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 소주도요, 전에는 1병 마시면 쓰러졌는데 지금은 2병 이상도 거뜬해요. 다음 날은 꼭 국물로 해장을 해야 하고요. 성격도 많이 급해졌어요. 하하.”
6개월쯤 됐을 때 조씨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던 그는 국토 대장정에서 알던 친구들의 소개로 우연히 음악인들을 알게 됐다. 그들이 연습할 때 녹음실에도 따라가고 같이 어울리다가 노래를 할 수 있게 됐다. 당시 그의 머릿 속에는 온통 음악 생각뿐이었다.
무명의 힙합 음악인들과의 인맥이 생기자 그는 욕심이 생겼다. 기회는 있을 때 잡으라 하지 않았던가. 조씨는 다시 기약없이 한국에 남아 있기로 결심했다.
그의 부모는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무작정 남아 있겠다는 그를 돌아오라고 설득했지만 결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어느날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는 친구 그룹에서 랩을 하는 멤버가 빠져 래퍼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 때부터 얼마 전까지 한 3년 동안 그 친구들과 활동을 했어요.”
‘한국이랑 미국이랑 어디가 좋냐’며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 “한국은 재미 있는 지옥이고, 미국은 재미 없는 천국”이란다. “한국은요,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요? 아무래도 그것만은 아닌 것 같고 치열하지만 뭔가를 얻었을 때,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만족감을 한층 더 크게 느끼도록 해 주고요.”
하루 하루 만족하며 꿈을 가지고 사는 그지만 가끔은 힘들 때가 있다. 가족과 친구들이 하염없이 그리울 때다. 처음 몇 달은 술만 마시면 시카고에 전화를 걸었다.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인 미국 추수감사절에는 이 곳에 있는 교포 친구들과 칠면조 대신 전기구이 통닭을 사다 놓고 파티를 한다.
그럴 때면 마음이 뿌듯해 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돈이 떨어져 석달을 집 없이 떠돌아 다니며 찜질방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친지들이 알면 섭섭해 할 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혼자서 책임지고 해결하고 싶으니까요.”
가수 유승준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을 때, 얼마 전 영어 학원 강사 자질 문제가 터졌을 때, 그는 교포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자는 일부인데도 마치 모두가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교포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정체성이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에서 태어나 ‘코리안 아메리칸(Korean-American)’이란 꼬리표를 달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살아간다.
어릴 때부터 그들은 끊임없이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가진다. 아직까지도 또래 친구들 중에는 그 답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도 많다.
“재미 교포들은 미국에서 ‘코리언 어메리컨’이라고 불리잖아요. 한국말을 전혀 할 줄도 모르고 와 보지도 않은 친구들도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해요.
그 만큼 모국에 대한 그리움이나 애착이 크다는 거죠. 요즘 교포들이 한국에 많이 나오는데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봐 주세요. 영어 가르쳐 용돈이나 벌어가려고 왔냐는 질문은 우리를 참 서글프게 합니다. 우리가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날이 곧 오겠죠?”
더듬더듬 하던 한국말도 여자 친구를 사귀면서 많이 늘었단다. 이제 친구들과 있을 때는 ‘골때리다’ ‘벙찌다’ 같은 은어를 쓰고 꿈도 한국말로 꾼다. 전에는 말하기 전에 영어로 생각한 후 한글로 번역해서 말했는데 이제는 말이 먼저다.
얼마 전부터 새로운 그룹의 멤버로 들어가 신인으로 곧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조씨. “부모님이 미국에서 고생하며 어렵게 키워준 만큼 저는 부모님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에서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26살의 꿈 많은 청년 조일문씨의 눈이 반짝거렸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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