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8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제안한 것은 임기 후반기의 ‘정치적 승부수’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권력의 상당 부분을 야당에 넘겨 준(準)내각제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사실상의 ‘동거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은 노 대통령 특유의 ‘올인 전략’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2003년 재신임 카드 등 정치적 고비마다 자신의 자리를 거는 도박을 했다. 이번엔 4월 재ㆍ보선 참패 후 여소야대 구조와 여권 지지율 하락이라는 난관 속에서 권력 나누기 카드를 꺼낸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제안의 배경으로 지역구도 타파 등을 위한 충정을 강조하지만 위헌 소지, 현실성, 국정운영 방향 혼돈 등에 대한 논란과 비판을 사고 있다.
▦제안 배경과 이유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구조의 타파와 지역주의 해소를 들었다. 특히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을 대연정의 전제 조건으로 걸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부산에 출마해 자주 낙선했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지역주의 극복은 정권교체 만큼 가치 있는 일로서 정치 생애를 건 목표”라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후보 시절 때부터 지역구도 타파를 조건으로 야당과의 동거정부를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혀왔다. 일부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영남권의 반(反) 여당 정서를 약화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연정 운영 방식
‘한나라당의 주도의 연정’은 사실상 한나라당에 총리 지명권을 주겠다는 뜻이다. 연정을 하면 한나라당이 지명한 인사를 총리에 임명하고, 헌법상 총리에게 부여된 각료제청권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대연정 체제에서는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 구성을 주도하게 되고 대통령은 이를 추인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모든 각료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연정에 참여한 정당들이 각료를 배분하게 되는데 한나라당이 의석 비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각료를 차지할 개연성이 있다. 대통령은 2선으로 후퇴하지만 헌법상 권한에 따라 인사와 정책 등에서 부분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따라서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외치(外治)와 내치(內治)를 나누는 이원집정부제와는 다르다.
▦논란과 문제점
우선 지적되는 문제는 대통령제 헌법에서 내각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하는 것은 위헌적이라는 것이다. 일부 헌법학자는 “내각제 방식의 국정 운영은 초헌법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우리 헌법은 단순한 대통령제가 아니므로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 운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 역사와 노선이 다른 정당이 대연정을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평화 민주세력으로 규정하고, 한나라당을 냉전, 부패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너무 가볍게 주고받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연정론 제기 시점도 논란이다. 노 대통령은 “정치가 잘 돼야 경제가 잘 된다”는 논리를 폈지만, 민생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큰 정치적 혼란을 부를 의제를 대통령이 발제하고 나선 게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많다.
일부에선 여당의 차기 집권이 불투명해지자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 내각제 등을 염두에 두고 대연정을 제의한 게 아니냐는 관
측이 나오고 있다.
▦현실성과 전망
노 대통령의 제안을 한나라당이 거부한데다 여당 내부에서도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연정이 성사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해 보인다. 노 대
통령이 22일 당정청 수뇌부 회의에서 대연정 얘기를 꺼냈을 때 참석한 여당 관계자 일부도 부정적 반응을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앞으로
도 계속 연정론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장기적으론 연정론이 개헌 문제와 맞물려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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