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지(본명 심향진ㆍ40)씨는 언제 부칠지 모르는 이산가족 영상편지를 4년째 찍고 있다. 고령의 이산가족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한 맺힌 사연을 영상으로 담아온 것이 어느새 130여 편에 이르렀다.
심씨는 덕성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화가로 활동하다 3년 전 대한적십자사가 주관한 ‘이산가족 영상편지 제작워크숍’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이산가족들과 인연을 맺었다. “분단의 땅에 살고 있는 젊은 작가로서 그분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이후 심씨는 이산가족들을 찾아다니며 캠코더에 사연을 담기 시작했다. 15분 안팎의 영상편지는 섭외, 촬영, 편집까지 완성하는 데 꼬박 1주일이 걸린다. 자원봉사자 이미애(36ㆍ공무원)씨와 최홍준(36ㆍ사진작가)가 도와주고 있다. 손이 모자라 지방 촬영은 어렵지만 외동딸 다슬(14ㆍ중학교 2학년)이가 내레이션을 도맡아 해 주는 등 가족들의 성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
그 동안 찍은 영상편지는 홈페이지(www.shimji.org)와 대한적십자사에 차곡차곡 보관되고 있다. 최근에는 영상편지 16편이 한국정책방송(KTV)의 ‘이산가족 영상편지’ 프로그램에 방영되기도 했다. 심씨가 찍은 이산가족 김인규(65ㆍ경기 파주시)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나이가 들수록 북에 두고 온 어머니, 동생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죽기 전에‘어머니’ 하고 목청껏 불러보고 품에 한번 안겨 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라고 말한다. 김씨의 고향은 도라산 전망대에 올라서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경기 개풍군 중면. 어머니를 못 잊어 평생 홀로 지내다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그는 내내 떨리는 목소리였다.
2년 전 별세한 최경순(당시 82세) 할머니도 잊혀지지 않는다. “제작을 마친 영상편지를 보여드리니까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평생 홀로 사셨지만 이제 죽어도 영상기록이 남으리란 걸 알고는 마음을 놓으신 거지요.” 할머니는 영상편지를 찍고 몇 달 만에 세상의 연을 놓았다.
다행히 올해 6ㆍ15 공동선언 5주년 때 남북 당국이 이산가족 화상 상봉에 합의해 영상편지가 남북을 오갈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또 통일부 주도로 4,000여 이산가족 영상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도 본격 추진 중이다. 여기엔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정성껏 찍고, 문서 DB 정리도 병행해야 한다”는 심씨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언젠가 상황이 좋아지면 제가 찍은 테이프가 북한의 가족들에게 전달될 날이 오겠지요. 돌아가신 분들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도 영상기록 작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심씨는 며칠 전 8월 15일 화상상봉 행사가 열리는 대한적십자사 강당에서 자신의 영상편지를 상영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심씨는 “이 행사에 참석한 북한 측 관계자들도 영상편지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남북한이 함께 영상편지를 제작해 하루 빨리 이산가족들이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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