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운영씨는 26일 오후 5시께 ‘사진촬영 금지’를 조건으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자신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딸(29)을 통해 최근의 심경과 도청 테이프 유출 과정을 밝힌 자술서를 공개하고, 한시간 뒤인 오후 6시께 22층 자택에서 자해했다.
공씨는 집 안에서 손녀의 유아용 풀장에 물을 받아 놓은 뒤 배를 흉기로 4차례 찔렀으며 수술결과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씨는 가족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에 의해 응급조치 후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공씨는 1시간30분 정도 수술을 받은 뒤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분당 서울대병원 윤유석 외과 교수는 “상처 4개 중 1개가 깊이 5~6㎝ 가량 됐지만 장기에는 이상이 없어 2주 정도 후면 퇴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씨가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며 자술서를 공개한 뒤 자해까지 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먼저 공씨는 24일 SBS와의 인터뷰가 보도된 뒤 외부 연락을 끊고 집에 숨어 지내왔다.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술서를 공개하고 자해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기부 X파일’을 언론에 흘린 인물로 알려진 재미동포 박모(58)씨가 출국하려다 공항 당국에 의해 저지되고 국정원의 조사를 받게 된 사실을 알게 되자 자기 해명 차원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장문의 자술서를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공씨가 기자회견을 자청한 시간은 이날 오후 4시30분께로 박씨가 국정원 조사를 받기 시작한 직후다.
국정원과의 사전 교감설에 대한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자술서 곳곳에 국정원 전ㆍ현직 직원들과 상의한 듯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 최근까지도 국정원 측과 모종의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자기 보호차원에서 자술서를 공개했거나 국정원 수사에 앞서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흘려 다가올 수사에 대비하고 증폭되는 의혹을 잠재우겠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공씨가 ‘자해소동’까지 벌인 데는 추측이 무성하다. 공씨가 자술서 공개 직후 취재에 응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자해를 시도한 점으로 미뤄 1시간여 동안 상당한 심리적 변화를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라고 말한 점과 자술서 말미에 “모든 것을 죽음까지 갖고 가겠습니다”라고 언급한 점 등은 공씨가 향후 거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왔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술서를 공개한 마당에 공씨가 굳이 자해를 선택한 것을 놓고 ‘태풍의 눈’이 될 수사의 압박을 잠시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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