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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쏠림'의 축복과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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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쏠림'의 축복과 저주

입력
2005.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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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체성 또는 본질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쏠림’일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 말이다. 그건 한국사회에 저주인 동시에 축복이었다.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사람과 예찬하는 사람은 각자 ‘동전 양면’의 다른 쪽을 보는 것일 뿐 본질적으론 같은 현상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른바 ‘서울공화국’‘서울대의 나라’‘삼성의 나라’ 등으로 대변되는 1극체제와 그에 따른 부작용이 쏠림의 저주라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과 민주화는 쏠림의 축복일 것이다.

한국인은 새것이라면 환장하고 유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줏대없는 민족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달리 보면 한국인이 구습 타파에 능하고 새로운 도전을 사랑하는 진취적인 민족이라고 긍정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울공화국, 서울대의 나라

쏠림은 인종학적ㆍ지리학적ㆍ지정학적ㆍ역사적 구조와 관행의 산물이다. 이젠 한국인의 유전자에 각인돼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한국인은 태어나자마자 쏠림에 맞는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 키워지며 쏠림의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쏠림의 법칙을 터득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주요 문제들은 쏠림 현상의 산물이다. 최근의 서울대 입시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대 입시정책 자체는 문제삼을 게 전혀 못된다.

오히려 국가경쟁력을 염두에 둔 서울대의 애국심에 칭찬과 격려를 보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워낙 쏠림이 강한 사회이다 보니까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할 때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낳을 사회적 파급 효과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서울대의 특수한 위상은 서울대에게 축복이자 저주인 셈이다.

서울대는 미국의 하버드대처럼 되어야 한다. 하버드대 출신은 미국 각 분야 엘리트 시장의 5% 이내 점유율을 갖고 있다. 그 희귀성 때문에 존경까지 누린다.

반면 서울대 출신은 어딜 가건 상층부 인력의 두 자리수 점유율을 자랑한다. 권력 분야에선 서울대 출신 아닌 사람이 희귀할 정도로 ‘유비쿼터스’하다. 그러니 서울대 출신이 실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존경 받긴 틀린 일이다.

그러나 서울대에게만 혁명적인 수준의 정원 축소를 요구하긴 어렵다. 연고대도 같은 수준의 정원 축소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각 분야 엘리트의 출신대학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

바로 이게 대학입시 문제의 핵심이다. 한국에선 존경받기 위한 열망으로 명문대에 가려는 게 아니라 거길 못 나오면 영원히 행세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명문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엘리트 구성의 다양화는 필연적으로 ‘패자부활전’을 당연시하는 풍토를 조성할 것이고, 대학입시에 집중되는 경쟁의 병목현상을 깨 중등교육의 정상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게 정답이긴 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이런 방안에 대해 ‘하향 평준화’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명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대학들의 정원 축소를 교육정책으로 삼긴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정부가 서울대를 윽박지르는 건 하수중의 하수다. 노사정위원회를 원용한 특별한 접근이 필요하다.

-명문대 독과점 깨야 교육 정상화

더불어 쏠림의 풍토 자체가 그런 시도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어디가 음식을 잘 한다고 일단 소문 나면 우우 몰려가 줄을 서서라도 반드시 그 집 음식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다. 그래서 무슨 일에서건 극단화 현상을 바로 잡는 게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가지 분명한 건 기존의 극소수 명문대 독과점 체제를 그대로 두고선 앞으로 어떤 입시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중등교육의 정상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피곤하고 살벌하게 살더라도 그 이유는 제대로 알고나 살자. 우리는 쏠림의 축복과 저주의 덫에 갇혀있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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