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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삼성판 납량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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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삼성판 납량특집

입력
2005.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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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 보다. 인기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이 끝나면서 삼복더위에 이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한숨을 쉬는 국민들이 많았다. 그러자 삼성이 최고의 기업답게 백배는 더 재미있는 논픽션 드라마를 국민들에게 선사하는 고객서비스에 나선 것이다.

이학수 부회장과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었던 홍석현 주미대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도청테이프 드라마는 역시 ‘사실이 픽션보다 기이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줄거리는 소문으로 나돌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번 테이프는 재벌과 주류언론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가 하면 김대중 후보와 신한국당의 다른 경선 후보들에 대해서도 보험성 자금지원을 논의하는 등 한국정치의 추한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1989년 삼성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투기실태 감사가 10일 만에 중단된 것을 이문옥 감사관이 폭로하자 검찰은 삼성의 외압 의혹은 밝히지 않고 이씨만 구속했었는데 이 사건 담당 검사가 떡값을 주어야 할 관리대상으로 이들의 대화에 등장한다는 보도에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도청테이프 논픽션 드라마

또 1997년 외환위기의 촉발제가 된 기아차 사태와 관련해, 기아차 인수를 노리고 삼성 금융계열사가 5,000억원을 한꺼번에 회수하면서 기아차는 부도위기에 몰렸고 채권단이 자금지원을 통해 기아차를 살리자고 했지만 부총리가 끝까지 매각을 고집해 위기가 커졌었는데, 기아차가 자금난을 겪고 있던 97년 4월 홍 사장이 새 부총리에게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이 부회장이 3∼5개 정도를 주라고 답하고 있다는 보도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그 어느 것보다도 무시무시한 최고의 납량 특집이다.

이번 테이프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추가 보도와 사법당국의 조사에 의해 밝혀질 것이며 또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몇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우선 얼마 전 이 칼럼(2005년 7월 5일자)에서 지적했듯이 민주주의란 탐욕을 탐욕으로 견제함으로써 발전한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분명 도청은 비난받아야 한다. 또 이를 폭로한 전 안전기획부 직원의 동기는 순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탐욕이 어둠 속에 묻혀버릴 뻔한 진실을 국민들이 알 수 있게 만들어줬다.

‘조선일보’의 탐욕도 한몫을 했다. MBC가 테이프를 입수하고도 비겁하게 보도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조선일보’가 특종의 욕심 때문인지, 경쟁사 ‘중앙일보’를 타격하기 위해서인지 선수를 치고 나와 보도경쟁을 촉발했다.

둘째, 이번 사태는 역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노무현 정부는 홍 전 사장이 주미대사로 있지 않았다면 지금쯤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대사 때문에 곤욕을 치루고 있다. 물론 홍 대사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무비리 전력 등을 이유로 시민단체들은 그의 주미대사 기용에 극력 반대했다. 결국 이 같은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한 잔머리 인사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릴까

셋째, 심각한 문제로 삼성의 오만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삼성은 당연히 국민에게 진지한 사과를 하고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 방송사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서니 과연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더니 오만하기 짝이 없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난리 통을 이용해 노무현정부가 때는 이때다 하고 8ㆍ15사면에 다수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비리 정치인에 대한 사면을 포함시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할 위험이 큰 만큼 정신 바짝 차리고 대비해야 한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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